[시론-유정우] KBS響 공백과 세계적 악단의 포화상태 기사의 사진

금년 3월, 정기 연주회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이후 공전을 거듭했던 KBS교향악단 문제가 재단법인화 추진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는 듯하다. 다행스런 일이다. 물론 법인화는 해결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 따름이고,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끌어 가는 것은 KBS교향악단과 경영진의 숙제로 남겨졌다. 경영진은 법인화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교향악단 내부의 불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법인화는 교향악단 활동에 있어 새로운 지평의 확장을 의미한다.

전환기 맞은 세계 음악산업

본고장 유럽의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지난 2000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은 투표를 통해 영국 지휘자 사이먼 래틀을 새로운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출했다. 누구나 열망하는 자리였지만 무엇 때문인지 래틀은 이후 2년 동안이나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은 채 베를린 주정부에 강력한 요구를 했다. 줄다리기 끝에 래틀의 요구사항은 관철되었고 그는 2002년 계약서에 사인했다. 그가 주정부에 요구한 게 바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법인화였다. 게다가 그는 정부지원금 인상이라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법인화를 통한 사업의 자유로운 확장과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베를린 필하모닉은 지금 그들의 130년 역사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선시돼야 할 것은 정기연주회의 조속한 정상화이다. 한국 오케스트라 문화의 중심축인 KBS교향악단이 이토록 오랫동안 활동의 공백을 가진다는 것은 득 될 것이 없다. 더구나 국내외 음악환경은 만만치 않다.

지금 세계 음악산업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클래식 음악 역시 처절한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한 지 오래다. 음반시장이 붕괴됨에 따라 세계의 음악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콘서트에서의 청중 확보에 열과 성을 쏟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을 찾은 네덜란드 명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얀 라스 행정감독은 “클래식의 미래는 아시아에 있다”고 언급했다. 아시아 팬들을 향한 립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사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아시아까지도 정규 활동 영역으로 삼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1984년 첫 내한 이래 21년 동안이나 한국을 찾지 않던 베를린 필하모닉은 2005년 두 번째 내한 공연 이후 3년 주기로 한국 청중들과 만나고 있다. 세계를 주도하는 오케스트라들이 포화상태에 이른 자신들의 안방 유럽을 넘어 세계, 특히 아시아를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21세기는 오케스트라의 제국주의 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대안은 국내 오케스트라의 자생적 발전이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눈부신 활약은 이런 우려를 상쇄시켜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상황이기에 KBS교향악단의 공백은 더욱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 돼야

현대의 오케스트라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일방적으로 지휘자의 해석을 수동적으로 따르던 과거와는 달리 21세기의 오케스트라는 능동적 음악성을 갖춘 존재이다. 음악적 해석력이 각기 독자적 경지에 올라 있는 비르투오조들의 집단인 것이다.

이번 KBS교향악단의 법인화가 단원들 간의 개성과 역량을 조율하고 그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도록 명석한 음악적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진부한 말이긴 하나 위기는 그 누군가에게 필연적으로 기회가 될 수밖에 없다. 음악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KBS교향악단이 법인화를 통해 지금까지의 갈등을 떨쳐 내고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내길 기대해 본다.

유정우(의사, 클래식 음악 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