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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속 과학읽기] (26) 승리의 여신보다 아름다운

[예술 속 과학읽기] (26) 승리의 여신보다 아름다운 기사의 사진

기차, 기선, 자동차, 비행기, 전화, 무선전신.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등장해 생활을 혁신시킨 발명품들이다. 기계와 속도는 모든 사람을 사로잡던 키워드였다. 1909년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는 “세상이 속도의 아름다움으로 더욱 풍요로워졌다”로 시작하는 마니페스토를 발표한다. 과학기술문명을 예찬하는 미래파의 탄생이었다. “시간과 공간은 죽었다. 우리는 이제 영원히,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속도를 창조했으므로 절대성 안에서 살고 있다”고 선언한 미래파는 자동차를 속도의 상징으로 들어 “사모트라스의 승리의 여신상보다 더 아름답다”라고 단언한다.

루이스 루솔로(1885∼1947)의 작품인 ‘자동차의 역동성’은 대기를 가르며 질주하는 자동차를 그렸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자동차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가며 주변의 공기가 갈라지고 퍼져 나가는 움직임과 자동차의 엔진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를 표현한다. 빨간 불꽃처럼 퍼지는 열기는 자동차가 만드는 굉음과 섞이며 대기를 끓어오르게 한다. 그려진 형상이 소리의 파장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루솔로는 음악가로도 활동하여 ‘소음의 예술’을 창안하기도 했다.

과거를 부인하고 미래를 개척할 것을 꿈꾸면서 전쟁을 찬양하던 미래파의 미학은 1914년 세계 1차 대전 발발 이후 점차 사라지게 된다.

김정화(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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