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경집] 종묘 앞에 실버도서관 짓자 기사의 사진

고령화사회가 가시화되면서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접근방식을 보면 주로 경제적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연금 상품 마케팅으로서는 호기일지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령화사회 문제의 핵심은 경제가 아니라 자존감이 아닐까?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건 전적으로 어르신들이 뼈 빠지게 노력하고 일한 덕택이다. 그런데 그들의 현실은 어떤가. 경제적으로는 부담으로, 정치적으로는 보수의 고정표쯤으로만 여긴다. 최소한 그들에 대한 존경과 보답이 있어야 한다. 그건 돈의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 문제의 핵심은 자존감

파고다공원이나 종묘 앞에 가면 노인 세상이다. 그들이 느긋하게 노후의 삶을 누리고 있다면 참 보기 좋은 모습이겠지만 실상은 반대다. 그들은 존경받는 세대가 아니라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후배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돈과 권력이 없으면 그렇게 암담한 노후가 있을 뿐이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을까?

종묘 앞에 실버도서관을 세우자. 노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책 읽는 모습 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하지만 그분들이 젊었을 때는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시간이 없을 만큼 죽어라 일했고, 지금은 책 살 돈이 없을 뿐이다. 물론 습관이 되지 않은 면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근육운동은 사위고 시간은 많다. 그리고 생각은 멈췄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유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연하고 너그러운 사고도 없고 정치적으로는 극단적 보수의 태도를 취한다.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이뤄온 경험과 결합되어 다음 세대에게 좋은 결실을 마련해줄 수도 있어야 한다. 자존감은 누가 주는 게 아니다. 본인의 몫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도록 사회가 최소한의 배려와 지원을 제공해야 가능하다.

도서관에는 책뿐 아니라 PC방과 카페도 마련하자. 당신들의 컴퓨터는 없다. 자식과 손주 몫이다. 게다가 컴퓨터는 어렵다고 여긴다. 그러나 컴퓨터도 쉽게 배울 수 있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할머니와 며느리가 이메일 등으로 소통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책을 빌려서 종묘 앞 벤치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봉사자들이 커피나 오미자차 등을 대접한다. 그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 모습을 본 후배들은 ‘열심히 살면 나중에 저렇게 대접 받고 우아하게 살 수 있구나’라고 여기지 않겠는가? 혹은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본보기도 될 것이다.

진작 있었어야 할 실버도서관이다. 이미 늦었다. 그러나 더 늦기 전에 종묘 앞에 그런 도서관을 마련해야 한다. 당신들에게 자존감을 돌려드려야 한다. 실버도서관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경로당은 작은 실버도서관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들의 경험을 담은 멋진 스토리텔링도 만들어낼 것이다. 사단법인 책읽는사회가 ‘말하는 건축가’의 주인공 고 정기용과 함께 ‘기적의 도서관’을 지으면서 아이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가!

책 읽으며 행복할 수 있게 해야

이제는 어르신을 위한 기적의 도서관을 지을 차례다. 순서가 바뀐 것은 송구하지만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그것은 비단 지금의 노인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도 곧 늙는다. 자존감이 송두리째 뽑힌 채 살고 싶은가? 그러니 그것은 곧 우리 모두를 위한 행복한 일이다.

파고다공원과 종묘 앞이 어르신들의 행복한 광장이 되도록 하자. 그분들이 행복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분들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해하고 자존감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건 최소한의 도리요 의무다.

김경집(인문학자·전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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