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경호] 연아의 품격 기사의 사진

듣는 김연아로서는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아무리 가르치는 교수로서 걱정돼 한 말이라고는 하지만 쇼라고 한 건 심했다. 그러나 황상민 교수의 지적에 ‘나름 합리’가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고 있던 차 김연아가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해 버렸다. 이번에는 김연아가 심했다. 황 교수가 발끈했다. 배우는 학생이 가르치는 교수를 고소한다며 살짝 감정이 묻어 있는 ‘소년등과’ 운운하며 심리학자의 전문지식까지 동원해서 나중에 잘사는지 두고 보자 해 버렸다. 이쯤 되면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이 되어 버린다. 관중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자살골이다. 마침내 김연아가 고소를 취하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싸움구경인데도 재미가 없었다.

우리나라 CF스타들의 활동을 보면 재벌들의 그것을 꼭 빼닮았다. 돈 되는 것은 뭐든지 하고 그것도 될 때 한꺼번에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문어발에다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는 한탕주의다. 물론 김연아가 CF모델 되려고 긴 시간 그렇게 피나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요정 김연아는 지금 CF퀸으로 그 정점에 서 있다. 부동의 CF모델 1위 자리를 벌써 몇 년째 유지하며 냉장고 에어컨 은행 워킹화 항공회사 세제 생리대… 기타 등등. 어떤 호사가의 집계에 의하면 14개사 18편에 이른다. 우유로 시작해서 커피를 거쳐 지금은 맥주 마시자며 날마다 우리들의 일상 속으로 그녀의 낯익은 얼굴이 파고든다.

그러나 김연아는 본인의 우상인 ‘피겨의 전설’ 미셸 콴이 선수시절 술 광고를 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고 있을까. ATF(미국 재무부 산하 연방 알코올·담배·총기국)의 주류 광고 시행령에 따른 스포츠 스타(sports celebrities)는 주류 광고에 등장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이기는 했지만.

요즘 들어 신문지면에 많이 등장하는 것이 조폭보다 더 무섭다는 ‘주폭’ 기사다. ‘술이 죄’라며 그동안 비교적 관대하게 넘어갔던 여러 가지 해악들을 말 못하는 술한테 뒤집어씌우기에는 그 후유증이 너무나도 크고 심각해서일까. 날마다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바로 이런 시점에 우리들의 국민요정 CF퀸 김연아가 몸을 흔들면서 ‘살아 있는 깨끗함 OOO…’ 하면서 술 광고를 할 게 아니라 금주 캠페인 공익광고에라도 나서 준다면,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으로 술 광고만은 하지 않겠다, 뭐 이런 발표쯤 해준다면, 미셸 콴은 규제에 의해서 ‘못했지만’ 우리의 연아는 자율에 의해서 술 광고 ‘안 하는 걸로’ 한다면,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몸이 꼬이는 듯한 긴장감과 함께 핑그르르한 감동을 주었던 트리플 악셀 때의 그 감동을 다시 한번 맛보게 할 수 있을 텐데….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술 광고만은 못 하겠다며 CF 제의를 거절한 탤런트를 알고 있다. 목사님 따님이면서도 소주 광고를 한 아이돌 스타를 또한 알고 있다. 둘의 차이는 바로 격(格)의 차이가 아닐까. 아직까지는 품격이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는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보면서 김연아의 품격을 생각해 보았다. 격이란 무대에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전성기 때가 아니라 이른바 ‘그 후의 삶’에서 나타나는 게 아닐까.

가수 아이유가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하고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아너스 클럽(honors club) 등의 활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선수 이후의 삶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유에게서 무게를 알 수 없는 진정성이 느껴지고 무표정한 홍명보가 축구감독이라기보다는 철학자처럼 느껴지는 건 그들의 삶이 만들어낸 품격이 향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나는 김연아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 맘껏 푸르다가 마침내 비르투오소(virtuoso)로 우리들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 오로지 한국 어머니의 힘 하나로 오늘의 김연아로 만들어낸 박미희 여사께서 이 글을 읽었으면 한다.

곽경호 방송작가ㆍ월간 SEE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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