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 칼럼] 反‘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기사의 사진

“이젠 감성적 민족지상주의 떨쳐버리고 국가안보에 관한 한 감정적 대처 삼가야”

20년쯤 전 당시 무명작가였던 김진명이 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이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1년 새 600만부나 팔렸다던가. 고 이휘소 박사를 모델로 한 재미 핵물리학자가 한국에 와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는가 하면 남북한이 손잡고 일본에 대항해 싸운다는 줄거리의 이 소설이 그토록 인기를 끈 이유를 놓고 ‘반일’을 바탕에 깐 감성적 민족지상주의를 자극한 결과라는 게 중평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본은 최대의 앙숙 아니 적임에 틀림없다. 남침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의 목숨을 빼앗고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고도 아직까지 남한 정복 욕심을 못 버리고 수시로 무력 도발하는 눈앞의 적 북한보다 훨씬 더 깊이 가슴에 사무치는. 이 같은 국민적 정서는 이번에 정부가 몰래 추진하다 반발에 부닥쳐 졸속 연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가 불거지자 인터넷에 “외적(外敵) 일본과 손잡고 동족 북한과 싸우겠다는 것이냐”는 힐난성 의문제기가 꼬리를 문 데서도 잘 드러난다.

과연 그런가?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하면 한국과 일본이 군사동맹국이 되는 건가? 한국과 미국처럼?

그렇지 않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은 국가 간 정보의 제공 방법, 제공 받는 정보의 보호와 관리 방법 등을 정한 정보 교류를 위한 기본 틀이다. 협정을 체결하더라도 정보 교환이 일괄적·의무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떤 정보를 공유할 것인지는 사안별로 검토해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이 협정 체결로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북한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가 “군사시설이나 군사비밀에 관해 주제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문제”라고 주장한 것도 옳지 않다.

옳지 않은 것은 또 있다. 미국이 그간 협정 체결 압력을 가해온 점을 들어 한·미·일 대 북·중·러의 냉전시대 대결구도로 복귀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한국이 이 협정을 추진하는 목적 가운데 북한의 핵·미사일에 관한 일본 측 정보 획득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는 것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남북 3각 동맹 간 ‘신냉전’을 부추기는 행위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은 이미 러시아와도 같은 협정을 체결해놓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과는 군사정보보호협정보다 군사적으로 한 단계 위라 할 수 있는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라든지 독도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이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정보 교환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이 역시 타당하지 않다. 오히려 군사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견제할 수 있고 독도를 둘러싼 양국 간 무력 충돌의 소지를 줄일 수도 있다.

특히 일본이 지닌 대북 정보는 한국보다 윗길이다. 4개나 되는 위성을 통한 영상 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광범위한 감청 정보와 함께 조총련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휴민트(인간정보)도 좌파정권을 거치면서 대북 휴민트가 초토화된 한국보다 낫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대북 정보를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일본의 우월한 대북 정보를 한국이 공유할 수 있는 방편이다.

그렇다면 야당이나 일부 국민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놓고 정략적·감정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가 하면 과거사 반성에 소극적이고 독도에 대해서도 억지를 부리면서 우리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지만 국가 안보에 관한 한 감정적 대처는 삼가는 게 옳다.

정치권도 국민의 뿌리깊은 반일감정을 이용해 정부를 흠집 내려 하거나 ‘종북 공격’에 대항하는 ‘친일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등 정략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밀실 추진으로 국민의 눈을 피하려 한 점은 책망 받아 마땅하지만 과거사와 안보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식의 감성적 민족지상주의는 이제 지양할 때가 됐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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