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희망을 선물한 베를린필 기사의 사진

학생들은 검은색 바지와 와이셔츠에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얼굴엔 긴장감이 흘렀다. 옆에는 금관악기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튜바 호른 트럼펫 트롬본.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음악은 세상과 통하는 가장 밝은 길이었다. 누군가 이들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이들의 소박한 연주를 듣고 세심하게 가르쳐주고 같이 연주했다. 꿈 같은 순간이었다.

인천 시각장애특수학교인 혜광학교 학생들과 최근 방한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라스 앙상블의 이야기다. 이들은 지난 1일 인천 이건창호 본사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 제자와 스승으로 만났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기다리는 학생들은 “팍팍한 빵에 생크림을 얹은 날”이라며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놀라 총 맞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뿐, 열여덟 열아홉 그 또래의 감성 그대로였다. 브라스 앙상블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호르니스트 사라 윌리스는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로 아이들을 맞으며 “이번 방한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마스터클래스”라면서 활짝 웃었다.

혜광학교 학생들이 실력을 선보이기 위해 연주한 곡은 ‘도레미송’과 ‘사랑’. 평범한 곡이었지만 베를린필은 “브라보, 리얼리 리얼리 원더풀”을 외치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베를린필 브라스 앙상블은 세계 3대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 안에서도 가장 오래된 앙상블이다. 12명 모두 악기별 세계 최고 수준의 연주자로 평가받는다. 이들은 교수나 행정가로도 활동 중이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 다들 격의 없고 소탈했다. 최고 예술가로서의 권위나 까다로움은 없었다. 마스터클래스는 형식적인 가르침이나 미디어용 이벤트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오히려 학생들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좀 더 멀리서 찍으라고 요청했다. 학생들에게 자신의 악기를 만져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악보를 받아든 즉석 연주였지만 기꺼이 시범을 보여줬고, 심지어 “이 부분은 내가 틀렸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자신이 맡은 악기를 연주하는 학생 옆에 서서 일대 일로 가르치고 협연도 했다. 이들은 평소에도 어린이와 장애인 음악 교육 프로그램에 자주 참여한다고 했다.

그 모습은 문득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입시 때마다 음대 비리가 불거지는 우리 클래식 음악계와 묘한 대비가 됐다. 실력이 좋은 스승이 아니라 대학과 인맥이 닿는 스승을 찾는 게 우리 현실이다. 수업은 종종 제자에 대한 사랑보다는 돈에 좌우된다.

베를린필은 최근 방한 기자회견에서 “클래식은 럭셔리가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클래식은 상류층을 위한 호사스러운 음악이 아니라는 뜻, 음악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영감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일 것이다. 영화나 연극에 비해 유난히 비싼 티켓 가격 때문일까. 우리에게 클래식은 아직도 럭셔리한 문화다.

그 클래식이 혜광학교에서는 필수다. 학생들은 모두 한 가지씩 악기를 배우고 있다. 이들은 매달 한 번씩 전교생이 모여 소규모 연주회를 연다. 요즘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을 위해 연습 중이다.

이들에게는 꿈이 있다. 언젠가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인들로만 이뤄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외국 순회공연을 하는 것이다. 이들의 꿈은 실현될까. 베를린필이 이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떠난 것만은 분명하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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