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정치인은 고되고 국민은 풍요롭고 이것이, 복지다 기사의 사진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최연혁/샘앤파커스

스웨덴 정치인들에게 특권의식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살인적인 업무 때문에 “힘들어서 못 하겠다”는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높은 정치인 이직률이 고민인 나라. 여야가 대선 표심잡기 차원에서 개혁 시늉을 해야 할 정도로 국회의원 특권이 과도한 대한민국에선 생경하기만한 풍경이다.

이런 정치문화의 뿌리는 이 나라 국민정서와 국민의식에 닿아 있다. 정치인도 결국 다양한 직업 배경을 가진 국민 중에서 한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쇠데르턴 대학 정치학과 한국인 교수인 저자는 이런 궁금증에서 복지 천국이라 불리는 스웨덴 국민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물로 나온 게 이 책이다.

◇인터뷰로 드러난 스웨덴 복지 속살=기존의 스웨덴 복지 관련 책들이 이론적 틀에 매몰됐다면 이 책은 개개인의 삶을 통해 만난 스웨덴 복지의 맨얼굴이다.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유명 정치인, 고등법원 판사, 유치원 교사, 퇴직한 옆집 노부부, 보일러 배관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을 만났다.

익히 아는 대로 이들은 대체로 풍요로운 복지를 누리며 살아간다. 건축회사 중역으로 일하다 퇴직한 옆집 아저씨 부부는 매월 세전 3만2000크로네(약 570만원)의 연금을 받으며 안정된 노후를 보낸다. 고교 2학년 때 부상으로 스키선수 꿈을 날리게 된 에바. 그녀는 음악을 들을 때만은 자신의 장애를 잊을 수 있었다. 결국 음악치료사로 재기하는 데 성공한다. 부유층의 경우 소득의 60%, 저소득자도 29%를 불평 없이 세금을 내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치인이 가장 고된 나라=배관공 아저씨도 할리데이비슨 마니아로 살아가는 이 나라에선 거꾸로 정치인이 가장 고된 직업이다. 상시회기제를 채택, 여름 두 달만 제외하고는 국회가 거의 10개월 열려 있어서다. 공무를 제외하곤 매일 출근해야 한다. 의원 1인당 4년 임기 내 입법 수는 평균 87개에 이른다. 200개 이상 입법안을 발의한 의원 수도 전체 349명 중 43명이다. 놀랍게도 개인 보좌관도 단 1명을 둘 수 없다보니 정치인 스스로 의회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져야 한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이직할 수밖에. 이직률이 30%에 이른다.

저자는 이 나라에 살면서 관찰한 덕분에 단지 넉넉한 국가 재원 덕분으로만 이런 시스템이 굴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스웨덴은 대학뿐 아니라 정부 연구기관, 정부 부처, 심지어 사기업 사무실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유리가 설치돼 있다. 누가 들여다볼까 걱정돼 어떻게 일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익숙해지면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큰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 투명유리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모든 것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암묵적 합의가 뒤에 숨어 있다.”(58쪽)

근간엔 헌법정신이 있다. 모든 공적 행위의 과정과 결과가 공개돼야 한다는 정보접근 원칙이 스웨덴 역사에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1766년 마련된 헌법에서였다.

◇현대사 종횡무진 넘나들어=책은 스웨덴의 현대사가 걸쳐져 재밌다. 1860년대까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고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나라였다. 그러나 바이킹의 후예들은 그 후 50년도 채 안돼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됐다. 1970년대 초 산유국을 제외한곤 1인당 국내총생산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된 것이다.

역경이 없었던 건 아니다. 스웨덴은 1990년대 초반 찾아온 경제 위기 이후 노사정 대타협, 경제 및 복지 정책의 과감한 개혁 등을 통해 2009년까지 평균 2.4%의 성장률을 유지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의 평균 1.8%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말 그대로 국민 머슴인 정치인들이 만든 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가 이런 성장의 바탕에 깔려 있다. 2012년 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지만 이곳은 무풍지대다. 수도 스톡홀름 중심가 백화점은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래서인가. 저자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스웨디시 드림’을 꿈꾸자고 권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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