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누가 어떤 가치를 보여줄 것인가 기사의 사진

“거의 공식화된 한국 대통령의 비극적 말로를 바꿀 수 있는 사람 선택해야”

현대의 유권자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책 한 권 보지 않고, 정치권의 편파적 이슈에 휩쓸려 다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좁은 땅의 유권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의 유권자들보다도 이념과 지역과 종교와 신분에 따라 분열적이고, 가치관은 극심한 파당성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누가 어떤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고, 누가 진짜 민생을 챙겨줄 것인지, 좋은 삶은 무엇인지 죄다 알고 있다.

대통령 선거 5개월을 앞두고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대선 경쟁에 나선 여남은 명의 후보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대통령이 되려 할 것인지, 유력한 대선 후보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야권과 어떤 통합과정을 거칠 것인지 관심 갖고 지켜보면서 투표전문가들이 다 된 한국의 유권자들은 누가 미래 대통령으로 적합한지 고단수로 체크하게 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의 말로는 비극적이라는 공식이 거의 만들어져 가고 있다. 민주화 이후 네 명의 대통령이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됐고, 주요 측근들이 대부분 감옥행을 한 현 대통령도 거의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일을 하기에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적인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다.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4년이 못되고, 방대한 권한을 지닌 의회의 협력을 얻기도 어려워 업적을 남기기 쉽지 않은 구조다. 게다가 임기 말이 되면 여당에서조차 미운 오리처럼 몰리는 처지가 되는 것이 한국 대통령의 현실이다.

이 같은 한계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대권 후보들은 어떤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지, 이런 한계를 극복할 어떤 가치관을 갖고 국정 운영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이제 대통령은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시대도 아니고, 권력에 맹종하고 아부를 일삼는 사람들과 더불어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도 않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미 4년 전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수세기 전부터 어떻게 예속되고 낙인 찍혔는지, 인종과 계층의 문제가 얼마나 미묘한 방식으로 삶을 바꾸어 놓을 것인지 솔직하게 호소하면서 대선에 나섰다. 그 바탕 위에서 이라크 전쟁과 인종문제로 분열된 미국 사회에 통합과 희망의 새로운 이상을 제시했다.

그 결과 수백년이 흘러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흑인 출신 대통령이 되었고, 국제사회의 분열적 이슈를 감싸 안는 행보로 미국 현직 대통령 중 세 번째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미국 파워의 쇠퇴를 진단하는 논의가 그치지 않고 있지만 사실 그는 지구촌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어떤 제국도 보여주지 못했던 최상의 파워를 가진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은 진보적인 목표를 보수적인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 국제관계에 능하면서도 겸손하고 스마트해서 많은 타국의 지도자들을 친구로 가질 수 있는 사람, 분열적인 우리 사회와 증오로 가득 찬 남북관계를 상식적인 수준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돼야 할 것이다. 더 바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지구촌의 이슈에 대해 직접 글을 쓸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스스로 관점을 챙겨갈 수 있는 정치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시킬 것은 많다. 우리가 일을 시키기 위해서 그는 전근대적인 권력게임에 치중하지 않고 측근들도 ‘의중(意中)’과 같은 궁중(宮中)용어에 매달리지 않는 현대적 관점을 가진 정치인이어야 한다.

또 쉽고 진실하게 설명할 줄 알아서 스스로 일하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하는 자질을 가진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한국 대통령의 비극적 말로를 다소나마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선거 슬로건도 평소 보여주는 참신한 인격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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