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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속 과학읽기] (28) 미술에 들어온 4차원

[예술 속 과학읽기] (28) 미술에 들어온 4차원 기사의 사진

1908년 국전(살롱)에 브라크가 출품한 ‘에스타크의 집’은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이 작품을 “작은 큐브들을 그려놓았다”고 한, 비아냥대는 표현에서 큐비즘은 유래한다. 르네상스 이래 미술이 한 시점에서 멈추어 대상을 파악하고 수학적 원근법에 입각한 과학적 재현을 목적으로 하였다면 이제 큐비즘과 함께 그림은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다중 시점을 채택한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인지하는 것으로 그리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그림은 3차원의 모방을 넘어서 시간을 담은 4차원으로 이동하였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시작한 새로운 미학을 추종하는 작가이자 이론가였던 글레즈와 메칭거는 ‘큐비즘에 관해’라는 저서에서 “모든 대상은 하나의 절대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을 지각하는 영역에 인지되는 평면의 수만큼의 형태가 있다”고 큐비즘을 설명한다.

수많은 역사가들이 아인슈타인과 피카소의 유사성을 강조해 왔다. 실제 이 두 사람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지만 물리학의 오랜 전통을 깬 아인슈타인과 피카소가 보여준 혁신이 20세기를 이해하는 주요 개념이 된 것은 사실이다.

김정화(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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