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울지마, 윤희! 기사의 사진

주말 TV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보시는지? 지난주 일요일 드디어 꿈의 시청률이란 40%를 넘어섰다.

푹 퍼져 TV 시청하는 것으로 한 주일의 피로를 푸는 기자도 시청률 상승에 한몫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청률 41.9%를 기록한 바로 그날, 열혈 시청자 대열에서 자진 하차키로 했다.

주인공 차윤희는 똑 부러지는 열혈 커리어우먼이다. 시집살이에 머리를 흔드는 주변의 ‘며느리들’(엄마와 올케 친구들)을 보면서 ‘능력 있는 고아’를 이상적인 남편상으로 꼽았던 그녀. 수백 번의 맞선 끝에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됐으니 딸린 시집식구 없고, 양부모 잘 만나 존스홉킨스 의대를 졸업한 테리를 만나 결혼했다. 그녀 마음에 꼭 들었던 ‘테리’가 친부모를 찾으면서

‘방귀남’이 됐고, 시집식구가 넝쿨째 등장했다.

본의 아니게 ‘시월드’에 입장하게 된 윤희는 현관 비밀번호 알려 달라는 시어머니 말씀, 야무지게 거절하고 12년 어린 막내시누에게 ‘왜 존대를 해야 하느냐’며 말 놓는다. 아! 이 장면에서 대리만족으로 속 시원한 며느리들 한둘이 아닐 듯싶다. 고백컨대 본인도 그 순간 옆에 있던 남편 ‘쎄게’ 째려봤다.

그런 그녀가 지난 일요일 시어머니 엄청애 여사 앞에서 펑펑 울고 섰다. 방귀남은 그런 그녀를 연애시절 만났던 교외 카페로 데리고 가고. 그런 남편에게 무한 감동하는 차윤희. 뭐야 이거?

임신으로 불이익을 당하던 회사에서 실력으로 제 자리를 되찾았던 똑똑한 윤희가 ‘시월드’에선 ‘여자의 눈물’이라는 고전적 무기를 휘두르며 남편에 기대는 모습이라니.

깐깐한 여성단체에서 성평등을 높이고 있다고 칭찬한 드라마에서 보는 장면이라 더욱 민망하다. 얼마 전 여성민우회는 ‘여주인공 차윤희가 시댁과의 가족관계에 있어 불평등한 부분에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드라마를 ‘막장’을 걷어내고 ‘성평등’을 높인 드라마로 뽑았다.

눈물바람인 윤희를 보면서 속았다 싶은 순간 그녀의 수상스러웠던 점이 떠올랐다. 윤희는 막내시누에게 존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같이 살 가족이니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확실히 말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역시 어린 둘째시누에게는 여전히 존대를 하지 않았던가. 막내시누에게 반말을 한 것이 가족 내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고군분투는 절대 아니었다.

윤희의 시댁은 며느리 말이라면 맞건 틀리건 시어머니가 내리눌렀던 예전과는 달랐던 건 사실. 하지만 맏딸의 이혼으로 ‘무데뽀’가 된 엄청애 여사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윤희 앞에 ‘시어머니의 권위’를 휘둘렀고, 윤희는 울 수밖에.

아직도 우리 집 안방과 주방에, 사회 곳곳에 남녀 불평등의 그물은 널리 깔려 있다. 다만 그 그물코는 예전에 비해 한결 느슨해졌다. 그래서 ‘똑똑한 윤희들’은 그 얼기설기해진 코 사이를 여유롭게 빠져나간다. 하지만 그물을 걷어치우지 않으면 언젠가는 걸리게 마련이다.

윤희야! 울음을 그치고 둘째시누에게도 말 놓는 것부터 시작해 불평등한 가족관계의 대안을 확실하게 보여줘라.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데 나서라. 그래서 주말 저녁 다시 느긋하게 드라마를 보면서 ‘호호’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라. 부탁한다, 윤희야!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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