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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박병권] 사법부가 바로 서야하는 이유

[여의춘추-박병권] 사법부가 바로 서야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국민행동의 준거를 정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한다”

요즘이야 유럽은 물론 세계의 골칫거리로 전락했지만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를 싹틔운 위대한 민족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개념화한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한 명품 중의 명품이다. 판사라는 직업이 이처럼 합리적인 사고를 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맹아를 보였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마을사람 간 분쟁이 생길 경우 그 동네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평판을 듣는 노인의 말에 절대 복종했다고 한다. 이 노인은 처음에는 아무 대가 없이 판단을 내려주다 마을의 생산력이 어느 정도 향상된 시기부터는 일정한 보수를 받기 시작했다. 대가라고 해봐야 판결하느라 자기 본업에 종사하지 못한 것을 보충해 주는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 한 되나 생선 두어 마리를 분쟁 당사자들이 반분해 냈을 것이란 추론이다.

탄생신화가 이처럼 우아한 직업은 흔치 않다. 가운을 입는 직업도 성직자와 법관, 교수 등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때로 법관이 성직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상징하듯 사법 불신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법원을 비판한 영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어려운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출세가도를 달리는 엘리트에 대한 시기도 작용했으리라.

사법 100년이 지났지만 국민행동의 준거를 정하는 최종적, 종국적 기관으로서의 역할은 아직 미미하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눈으로 봤을 때 봐주기 판결로 비칠 만한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민사 사건이야 당사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봐줄래야 봐줄 수도 없겠지만 다수 국민이 피해자인 형사 사건에서는 비일비재하다. 국민적 관심사인 재벌 총수에 대한 판결이 특히 그래왔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90년 이후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7명이 수백억∼수천억원의 회사 돈을 개인 용도로 빼돌리거나 편법 상속, 증여의 수단으로 사용하다 적발됐으나 약한 처벌을 받았다. 재벌용 처벌 기준이 있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1심에서는 징역 3년의 실형, 항소심에서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이 공정가란 말이 서초동 법조계를 지배했다.

재벌 총수들이 우리 경제의 주역이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을 뿐 아니라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 감형의 주된 참작이유였다. 바로 이런 법원의 행태가 사법 불신을 가중시키고 재벌과 국민의 간격을 벌렸다. 일전에 여권 의원 몇 명이 특경가법의 배임·횡령죄의 법정 최저형을 대폭 올려 아예 판사들이 집행유예 선고를 할 수 없도록 개정안을 낸 것도 따지고 보면 법원 불신이 원인이다.

집행유예를 선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판사의 판단권을 극도로 제한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안은 주목을 받았다. 입법자들이야 재벌의 부도덕성을 사회적 합의로 응징하고자 안을 냈겠지만 원인은 법원에 있다. 멀쩡한 법을 판사들이 제대로 적용하기만 했어도 이런 개정안은 원초적으로 불필요한데도 법원의 직무유기 내지는 직무태만으로 입법과잉 상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비단 재벌에 대한 판결뿐 아니라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선거법을 위반한 현직 국회의원 재판은 시간을 질질 끌다 임기가 다 끝날 무렵 마지못해 판결을 내리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법원은 선거가 끝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조속한 시일 내 선고를 해 당락을 결정짓겠다고 천명하고도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았다거나 증거 제출이 늦었다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세월을 보낸다.

문제는 법원이 재벌과 국회의원 등 우리 사회에서 내로라하는 피고인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할 경우 사법 불신을 넘어 그 직업군 모두를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사실이다. 법관이 죄 지은 자를 제대로 응징함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는 역할도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갈등의 종국적인 해결사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말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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