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호 칼럼] 길 위의 평화를 위하여 기사의 사진

“올레와 둘레길이 위기다. 지금부터 희망이 시작된다. 치유를 위해 힘차게 걷자”

고은 시인은 눈부신 감성으로 길을 노래했다.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안에서는 어둠이노라.”(‘눈길’) 그는 길을 묵념의 가장자리로 표현했다. 또 다른 시 ‘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길이 없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숨막히며/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

고은의 길은 중국 작가 루쉰의 것과 겹친다. 그는 ‘고향’이라는 책에서 근사한 말을 남겼다. “希望本是無所謂有, 無所謂無的(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這正如地上的路(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其實地上本沒有路(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走的人多了, 也便成了路(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 마지막 구절을 애송하는 사람이 많다.

길에서 희망을 찾는 이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속도전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느림의 가치, 걷는 즐거움을 안겨 준 게 시골길이고 올레길이었다. 사람들은 버려진 길을 연결해 둘레길을 만들었고, 올레길은 아름다운 제주를 한 바퀴로 이었다. “산책이야말로 인간을 깊이 있게 만드는 위대한 행위”라는 지식인들의 지지가 이어졌고, 전국에서 걷기 붐이 일었다. 그 평화의 순례길이 흉악범의 습격을 받았으니 기함할 수밖에.

한아름양이 살던 경남 통영시 산양읍 진전리는 미륵섬의 외진 시골이다. 주민들은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하거나, 더러는 굴 까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교사의 꿈을 키우던 초등학교 4학년 소녀가 방학을 며칠 앞두고 이웃 아저씨에게 변을 당했다.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은 범인은 취재 나온 방송사 마이크에 대고 “아름이 정류장에 있는 거 보고, 저는 밭으로 갔습니다.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라고 인터뷰했다.

그는 성폭력 전과자다. 2005년 개울가에서 이웃동네 6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반항하자 돌로 내리쳐 다치게 한 혐의로 4년간 복역했다. 그는 교도소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통영에 사는 그는 동피랑의 아름다운 벽화를 보고, 유치환의 시를 읽고, 한산도에서 이순신의 흔적을 찾았을까. 아쉬움은 또 있다. 소녀의 집에서 산양초교까지는 2.6㎞. 어린 아이가 한여름 뙤약볕에서 걷기는 힘든 거리다. 애초에 집 가까운 곳에 화양초교가 있었으나 분교로 쪼그라들었다가 2008년에 폐교되고 말았다.

제주 올레는 사색의 길로 유명하다. 1코스부터 21코스까지 해안과 야산을 걷는다. 콘셉트가 바다와 숲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이 싱그러운 숲길에서 40대 치한이 마각을 드러냈다. 현지 주민이라는 범인은 제주의 역사와 자연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8년간 귀양살이한 추사의 삶을 아는지, 정약현의 딸로 태어났다가 노비로 죽은 정난주의 집터를 보았는지, 죽으러 왔다가 용기를 얻어 살아 돌아간다는 육지 올레꾼들의 이야기를 듣기나 했는지.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올레 1코스를 잠정폐쇄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리 위중하고 욕을 먹어도 길을 막겠다는 식의 대응은 성급하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해서 고속도로를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지금처럼 코스별 ‘난이도’를 알려줄 것이 아니라 ‘위험도’를 표시해 주면 여행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길 하나 지키지 못하는 현실이 가엾지만 이런 때일수록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고은과 루쉰의 말대로 지금부터가 희망이고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다. 올레를 만든 서명숙의 스피릿도 그렇지 않은가. “길이 막혔으면 뚫는다, 길이 끊겼다면 잇는다, 길이 없으면 만든다.” 이제 남은 것은 길을 없애기보다 지키고 가꾸는 일이다. 통영에서 제주까지 평화의 길을 다시 힘차게 걷자. 그것이 길 위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길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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