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4)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사의 사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헨리 나우웬, 최종훈 옮김, 포이에마)

군대생활 34개월 17일 동안 늘 머릿속을 맴돈 생각은 ‘집으로 가는 일’이었다. 정훈장교는 우리들을 모아놓고 애국, 국방 같은 이야기로 열변을 토했지만 미안하게도 그런 말은 귓가에 맴돌다 사라질 뿐이었다. 휴가를 받아 집에 가게 될 때면 설렘 때문에 그 전날 밤을 꼬박 새우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해서 집으로 가면 어머니는 언제나 대문간에 나와 서 계시곤 했다. 날이 저물어도 내가 도착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군복 입은 내 모습을 보시며 왈칵 반가움에 얼굴이 환해지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어머니 떠나신 후로는 그 그리운 집도 멀어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그곳은 진짜 고향집이 아니었을까.

저명한 영성 학자이자 교수이고 문필가이며 성직자이기도 했던 헨리 나우웬. 그의 마흔 권에 달하는 저서 역시 고향집에 관한 것, 그리고 그 집으로 가는 길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금세기 최고의 명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아직도 가야할 길’의 스캇 펙 박사도 한 책의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 지구는 내 진짜 고향이 아니라는 뿌리 깊은 생각이 있었다”고 고백하며 마음 한구석에 늘 돌아가야 할 진짜 고향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고 말한 바 있다.

진짜 고향. 기독교에서는 그것을 본향, 즉 원래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그리운 그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에 관한 수상록이다. 저자 자신이 그 드높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실향민적 아픔과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먼저 고백한다.

예를 들면 생애의 가장 빛나던 하버드대 교수시절 한때가 사실은 생애 중 가장 불행했었노라고 고백할 정도인 것이다. 그가 교수직을 버리고 장애우들의 공동체인 라르쉬 마을로 들어간 것도 어쩌면 고향 찾기를 위한 서성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렘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환’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그림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탕자의 귀환’은 성경에 나오는 너무도 유명한 탕자의 비유를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작품 ‘탕자의 귀환’은 렘브란트가 소위 잘나가던 시절에 그린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상실과 쓰라린 아픔을 겪은 후의 만년 작품이었다. 여러 명의 자식과 두 아내가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을 뿐더러 전 재산을 잃고 명예와 인기까지 추락한 다음에 그린 것이었다.

예컨대 인생의 온갖 상실과 아픔을 경험한 뒤에, 늙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로 만든 작품이었다. 저자는 직접 그림이 걸린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찾아가 무려 사흘 동안을 그림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 몇 시간씩이나 보았노라고 쓰고 있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뿐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림을 묵상했고, 둘째 아들과 첫째 아들의 관점을 번갈아가며 묵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큰아들과(科)’에 속한 문제아임을 자각하게 된다. 자신 안에 남들이 자신과 동등해지는 기미만 있어도 불안해지는 오만과 독선, 그리고 두려움의 실체가 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저자가 처음 라르쉬 공동체를 찾아갔을 때의 일화 한 토막. 한 남자가 물었다. “누구세요?” 나우웬은 설마 나를 모르랴 싶어 하버드대 교수 아무개라고 자신을 설명했다. 그러자 남자가 다시 묻는다. “하버드? 그게 뭐예요?” 나우웬은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좋은 대학이라고 설명했지만 남자는 다시 맑은 눈으로 묻는다. “사람들이 왜 거기에 가고 싶어 하죠?”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누구세요?”하고 물었을 때 이미 그는 내면으로부터 쌓아올려진 성 하나가 소리 없이 무너지는 것을 체험한다. 그는 그 장애우 공동체에 있는 동안 적어도 교수 시절보다는 훨씬 행복했노라고 고백한다. 어쩌면 그곳이 대학보다 고향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리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둘째 아들이 그리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적고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집에 있던 큰아들 역시 진정한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임을 적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야말로 ‘큰아들과’와 ‘작은아들과’에 고루 속하는, 아버지의 사랑밖에는 집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는 탕자 중의 탕자임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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