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런던올림픽 개막식과 한류 기사의 사진

“한류의 방향성과 전통적 가치를 질문해야 할 때…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보라”

프로 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는 한국말을 잘하는 선수로 화제가 높다. 얼마 전에는 기아 이범호 선수를 상대로 안타를 날렸다.

기아자동차 광고에서는 이범호 선수가 번트를 댔을 때 “타자라면 누구나 홈런을 치고 싶지만 팀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번트를 댑니다. 세상에 오직 야구만이 희생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를 합니다”라는 멘트가 나온다. 그러자 사도스키는 “난 이범호를 볼 때마다 희생 번트 대는 것을 상상하지만 왜 내가 던질 때에는 그러지 않는 것인지… 희생이란 다 거짓말”이라고 트윗을 날렸다. 산뜻한 안타다. 이런 글도 화제에 올랐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영어로 ‘Hey!’라고 불러서 내가 한국말로 ‘야!’라고 대답했더니 그가 나에게 화 냈어.”

여기에 포인트가 있다. 영어 ‘Hey’는 사도스키의 응답처럼 한국말로 ‘야’에 해당한다. Hey의 사촌쯤 되는 영어로 ‘Hi’가 있다. ‘안녕’이나 ‘야’에 해당하는 영어다. 서울시는 이 인사말을 브랜드 슬로건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Hi Seoul’이라는 슬로건에 “시민의 에너지와 자부심을 하나로 모아 서울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브랜딩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하이’는 이렇게 멋진 의미 체계이기보다는 보통의 인사말로 받아들여진다. 사도스키의 지적대로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인이 화를 낼 수도 있는 격식을 갖추지 않은 인사말이다.

28일(한국시각) 새벽에 열린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슬로건인 ‘경이로운 영국(Isles of Wonder)’과 ‘하이 서울’이 자꾸 비교됐다. 문학과 대중문화를 축으로 셰익스피어와 비틀즈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농촌과 산업혁명, 대공항,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영국 근현대사를 장엄하게 펼쳐낸 대 서사시였다. 산업혁명의 공장굴뚝과 빅 밴의 타종이 상징하는 ‘경이로운 영국’의 잠재력이 어디서 나와서 무엇을 향해 흘러가는지를 보여줬다. 나이 70의 폴 매카트니가 ‘헤이 쥬드’(Hey Jude)라는 낡은 코드로 8만 관객의 통일성을 이끌어내는 저력도 볼만한 것이었다.

여기서 돌이켜보고 싶은 것이 한류의 내재력이다. 한류가 어제 오늘의 트렌드가 아님에도 궁극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문화콘텐츠는 불분명하다. ‘겨울연가’와 ‘대장금’ 같은 드라마, 소녀시대 류의 집단가무, 가치 체계가 불분명한 하이 서울 류의 슬로건…. 그런 것들의 총화인 한류는 이제 체계화된 문화 전통을 요구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이 보여주듯 대중문화에도 유행이나 재미만이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한류는 지금까지 스타들이 그 공감할만한 가치 중에서 ‘재미’라는 부분을 책임져왔다. 그러나 한류가 더 폭넓어지기 위해서는 스타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한류가 확산돼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시아 지역의 수출비중이 70% 이상이며, 특히 방송 음악 부분의 아시아 편중도는 95%에 육박한다.

한국 문화의 전통적인 가치와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정체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한류에 대한 집중력이 생기고 방향이 선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보다 전문성을 지닌 민간재단의 역할이 요청된다.

일본은 지난해 7월 ‘창조산업진흥전략’을 발표했다. 기존의 ‘쿨 재팬(Cool Japan)’에 전통문화 생활양식을 가미시켜 국가브랜드로 만들어 한류 추격에 나선 것이다. 중국의 ‘문화산업 부흥계획’, 프랑스의 ‘문화와 미디어 2030’ 등 문화 강국들의 중장기 전략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들은 적어도 한 세기 이상 세계에 자국 문화 선풍을 일으킨 경험이 있는 국가들이다. 별 힘 안들이고도 ‘아! 일본(중국, 프랑스)문화’라는 감탄사를 유도해낼 수 있는 바탕이 있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전통을 설명할 수 있고, 형상화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류는 그것을 요구한다.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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