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문화의 품격 기사의 사진

영국이 세계에 뽐내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았다. 비틀스, 해리 포터, 윌리엄 셰익스피어, 007, 미스터 빈…. 영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인의 것이 된 문화가 차고 넘쳤다. 부러웠다. 런던올림픽 개막식 전체를 도도하게 흐르던 그 문화적 자신감이.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비틀스의 멤버이자 ‘살아 있는 전설’ 폴 매카트니의 등장이었다. 피아노를 치며 ‘헤이 주드’를 부르던 그는 노래의 후렴구인 ‘나∼나나나∼’ 부분에서 무대로 나와 경기장에 모인 8만 관중의 호응을 유도했다. 더 크게 부르라는 뜻으로 손을 귀에 갖다 대는 흔한 동작도 그가 하니 달라보였다. 지난달 70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여전히 무대에 서는 현역 가수이자 영국인에게 존경받는 기사 작위를 받은 ‘경(卿)’이다. 연륜과 경험이 존중받는 영국이라는 나라의 품격마저 느낄 수 있었다.

비틀스가 있다는 것, ‘헤이 주드’라는 전 세계인이 함께 공유할 노래가 있다는 것, 70세의 폴 매카트니가 여전히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해가 지지 않았던 나라’ 영국이 노래 한 곡으로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비틀스뿐이 아니었다. 각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아델, 비지스, 롤링 스톤스, 퀸, 에릭 클랩튼, 레드 제플린, 딥 퍼플, 라디오 헤드 등 영국이 자랑하는 팝음악이 흘러나왔다. “봤지, 알지? 이 모두 영국 거야”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007은 또 어떠한가. 86세의 엘리자베스 2세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대니얼 크레이그와 함께 영상에 출연한다는 발상은 007이라는 문화 자원을 가진 영국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개막식 주제 ‘경이로운 영국’은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더 템페스트(The Tempest)’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인공이 자신을 배신한 동생에게 복수대신 화해를 건넨다는 내용으로 산업혁명기의 반목과 대립을 현재의 희망과 이해로 발전시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영화 ‘불의 전차’와 ‘미스터 빈’ 로언 앳킨슨의 코믹 연기를 한데 묶은 장면에서는 여유로움마저 느껴졌다.

런던 웨스트엔드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세계 뮤지컬의 양대 축이다.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이 탄생한 곳도 영국이다. 런던이 처음으로 세 번이나 올림픽을 개최한 배경에는 이런 문화의 힘이 숨겨져 있다. 문화의 품격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서 자부심은 더 클 것이다.

개막식 총연출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 8개 부문을 휩쓴 대니 보일 감독이 맡았다. 스타 한 명 나오지 않은 이 영화로 전 세계인의 관심과 공감을 얻었던 그는 개막식도 뻔한 기대를 뛰어넘었다. 그의 상상 속에서 경기장은 한 폭의 무대가 됐다. 육상 트랙이 강물로, 필드가 푸른 벌판으로 바뀌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의 아일랜드계 영국인 감독은 노동과 복지를 말하면서도 문화를 접목시켜 경쾌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선수단 입장이 끝난 뒤 하늘에서 떨어진 70억장의 종이는 70억명의 인구를 상징했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지은 건설노동자들이 작업복을 입고 경기장 앞에 서서 박수로 성화 봉송 주자를 맞는 장면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무하마드 알리가 올림픽기 운반에 초대된 것도 이런 분위기라면 당연한 것이었다.

2014년 아시안게임과 2018년 동계올림픽은 우리 차례다. 우리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세계와 소통할 한국 문화의 품격을 기대해본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