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 칼럼] 北 변화 조짐, ‘제비’인가 ‘낙엽’인가 기사의 사진

“김정은의 파격이 중국 소련 개혁·개방 과정과 닮아 본격 변화 서곡일 가능성”

세상사 흐름을 파악하는 데 두 가지 상반되는 접근법이 있다. ‘제비 한 마리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라는 파와 ‘낙엽 한 잎 떨어지매 천하 가을 됨을 안다’는 파다. 하나의 징후만 봐도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게 후자라면 한두 가지 조짐만으로 대세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쪽이 전자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에서 변화의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게 김정은의 오른팔로 꼽혀온 군부 실세 이영호 총참모장의 전격 해임과 김일성 김정일 때까지 대체로 꽁꽁 숨겨온 퍼스트레이디의 공개다. 이는 일단 선군(先軍)정치 탈피 및 개방의 단적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북한은 지난 29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통해 최근의 ‘경이적인 사변들’을 개혁·개방 시도로 해석하는 것은 아전인수 격이라고 펄쩍 뛰었다.

그럼에도 변화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이거니와 다만 그것이 선대와 지도력 차별화를 노린 김정은의 일시적 이미지 메이킹이나 변덕 탓인지, 아니면 궁극적으로 선민(先民) 또는 선경(先經)정치로 가는 것인지, 또 비밀과 집단 광기에 휩싸인 비정상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교(邪敎)집단에서 정상적이고 예측 가능한 국가로 탈바꿈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 정부도 이를 가늠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대북 주무부처인 통일부의 류우익 장관만 해도 발언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는 지난 24일 이영호 숙청을 놓고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는 것인지 속단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다음 날에는 국회에 출석해 “북한 내부에서 어느 정도 (개혁·개방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 보면 북한의 변화 조짐은 아무래도 ‘제비’보다는 ‘낙엽’ 쪽에 가까워 보인다.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대개 그렇다.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주펑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정은의 북한이 개혁·개방을 막 시작한 1970년대 말의 중국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4월 노동신문에 실린 “경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내각에 집중하고 내각의 통일된 지휘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는 김정은의 발언과 이영호의 전격 해임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군부의 경제활동을 전면 금지시킨 중국과 닮은꼴이며 북한 내부 체제 변혁의 ‘서곡’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도 옛 소련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북한의 변화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북한의 새로운 세대에 의한 변화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소련에서 53년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이후 자란 사람들은 권력기관을 덜 무서워하고 외부세계를 더 잘 알게 됐고,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의심도 더욱 심해졌다. 이는 북한의 30세 미만 이른바 ‘장마당 세대’의 특성과 겹친다.

이들은 경제위기와 기근 속에서 배급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어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고 부정부패의 폭발적인 증가 때문에 국가가 관대해진 결과 권력기관을 덜 무서워하게 됐으며,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를 더 많이 알고 있다. 란코프 교수의 지적대로라면 이들이 시대착오적인 북한의 각종 제도를 철폐하고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김정은의 변화 추구(만일 그런 게 있다면)에 하나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의 반민주적 세습독재와 대남 도발 행태에 절망감까지 느껴온 우리 입장에서 일단 김정은의 변화 추구는 일시적이건 본질적이건 대단히 반갑다.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지만 김정은의 개혁·개방으로 북한 인민들이 선군정치라는 시대착오적 질곡에서 풀려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이라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하지만 북한이 개혁·개방을 통해 부강한 나라, 곧 ‘강성대국’이 되면 그만큼 통일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글쎄, 기우일까?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