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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이동훈] 슈퍼부자와 세금폭탄

[데스크시각-이동훈] 슈퍼부자와 세금폭탄 기사의 사진

2년 가까이 전 세계 경제정책 입안자들을 가장 성가시게 하는 문제를 하나 꼽는다면 재정위기일 것이다.

터널 끝이 보이는가 싶으면 다시 암흑 속으로 빠져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채무위기를 필두로 미국, 일본은 물론 신흥 경제국들도 재정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유로존 구제금융 1호 국가인 그리스가 선조들의 찬란했던 고대 헬레니즘 유산을 팔아치우는 것도 모자라 전국 40여개 대학 가운데 4분의 1인 10여곳을 폐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외신 보도는 나라 곳간을 거덜내면 얼마나 심각한 ‘민폐’로 이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정위기에 각국 부자증세

곳간을 채울 방법이 없는 미국 등 선진국 정부와 정치권은 급기야 증세의 유혹에 빠졌다. 특히 부자증세 방안은 이제 유행이 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부자들에게 최고 75%의 세율을 적용하는 충격요법까지 동원해 영국 정부의 조롱을 샀다. 우리나라 정치권도 이에 뒤질세라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부자증세 대열에 뛰어들었다.

최근엔 밋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의 재산이 숨겨졌다고 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단골 공격 메뉴가 된 조세회피지역(Tax Haven)이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지난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맨군도,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지역에 숨겨진 전 세계 ‘슈퍼리치’ 9만2000명의 재산이 최대 32조 달러로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5조 달러의 2배가 넘는다.

전 세계 인구 비율로 따지면 이들은 0.001%로 슈퍼리치라는 단어에 ‘울트라(ultra)’라는 형용사까지 붙여줘야 할 판이다. 이들이 숨긴 자산으로 3%의 수익을 거둔다고 보고 30%의 세율을 적용한다면 1890억 달러의 세수증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 세계 빈국을 위해 매년 선진 회원국들로부터 십시일반 갹출하는 860억 달러의 공적개발원조(ODA)에 보태고도 남는 돈이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이 단체는 주장한다.

때마침 미 보수언론 논객들은 증세 분위기에 대항해 작은정부와 탈규제 이론으로 1980년대 초부터 공화당 행정부 경제정책의 토대를 이뤄 온 시카고학파의 거두 고(故)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31일(현지시간)로 탄생 100주년이 됐다며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규제주의자들의 제물이 됐던 그를 부활시켜 대반격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 역시 99.99%를 위한 실질적 논의보다는 선거를 앞둔 보수표 모으기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관심은 ‘곳간 민심’보다는 ‘선거 표심’을 겨냥한 이 같은 마녀사냥식 증세 논쟁들이 과연 재정 확충으로 이어질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투자 늘려 재정확충할 수도

오는 10월 글로벌 슈퍼부자와 관련된 책 출간을 준비 중인 로이터 통신의 온라인 편집장 크리스티야 프리랜드는 정치권의 세금 논쟁이 공정과 불공정의 관점에서만 이뤄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보다는 세수입이 필요보다 높은가, 낮은가로부터 접근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오히려 부자들의 세율을 낮춰야 이들이 투자를 늘려 나머지 99.99%도 일자리 늘리기를 통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자들의 속성상 매력적인 곳에 투자자산을 보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규제완화 조치를 잇따라 발표하거나 사회의 기층 세력인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는 중국이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더 치밀하고 영리해 보인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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