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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이명희] 무상복지 굿판을 걷어치워라

[여의춘추―이명희] 무상복지 굿판을 걷어치워라 기사의 사진

“유권자 표 노린 선심성 복지정책 쏟아내기보다 복지 사각지대부터 챙겨야”

몇 년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으로 연수를 갔을 때였다. 머리를 자르기 위해 한인 미용실에 들렀더니 외환위기 때 생활이 어려워져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 왔다는 여주인이 푸념을 늘어놨다. 한국에서 돈깨나 번다는 의사가 이 지역 대학의 방문연구원을 신청해 연수를 왔는데 초등학생 자녀의 급식비를 아끼기 위해 소득원이 없다는 서류를 미국 공립학교에 냈단다. 아이는 미국 저소득층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공짜로 점심을 먹고 있고, 그 의사는 ‘미국 생활의 팁’이라며 자랑삼아 이 내용을 한인 유학생들과 연수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용실 여주인은 자신처럼 이국 땅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한인들 얼굴에 먹칠 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한 끼 2.5달러 하는 점심값이 없다면서 수백∼수천 달러씩 드는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이나 남미여행을 다니는 의사 가족을 보고 현지 한인들은 분통이 터졌을 거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던가. 선거철에 접어든 대한민국에 무상복지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재작년 6·2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들고 나온 야당에 참패하고 서울시장 자리까지 뺏긴 여당은 지난해 말 0∼2세 영·유아 무상보육 카드를 빼들었다. 유럽 선진국가들도 부모의 소득에 따라 차등지급하는 영·유아 보육비를 정부가 몽땅 대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짜를 놓칠세라 집에서 엄마 손에 크던 아이들이 보육시설로 쏟아져 나왔다. 당장 지자체 돈이 없어 무상보육이 중단될 판인데 선거를 코앞에 둔 정치권은 나라곳간을 열라며 으름장을 놓는 중이다.

대선 경선주자들은 연일 유권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만으로도 허리가 휘청할 지경인데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고등학교 교육도 공짜로 시켜주겠다고 나섰다.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공공산후조리원 등 공약대로 다 된다면 대한민국은 지상천국이 될 거다. 이들 눈에는 곳간이 거덜나 국제사회에 손 벌리게 된 스페인이나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는 나랏빚에 짓눌려 뒤늦게 복지공약을 철회하고 소비세를 인상하는 등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본이 보이지 않는가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갓 넘어선 우리가 국민소득 3만, 4만 달러 선진국들을 좇아 복지정책들을 덜컥 도입했다가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는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대중은 공짜점심을 원하며,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 공짜점심을 제공하겠다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것이 미국 경제를 파산에 이르게 했다”고 일갈했다. 우리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재벌가 손자까지 보육비 대주고, 공짜점심 주고, 고등학교까지 공짜로 교육 시킬 돈이 있다면 복지 사각지대부터 챙겨라. 이웃 아저씨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통영의 초등학교 4학년생 아름이는 홀로 배곯는 아이였다고 한다. 건설직 일용직 아버지는 새벽같이 일을 나가 밤늦게 귀가하고, 다방에서 일하는 새엄마는 한 달 전 집을 나가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강릉에서는 미혼모인 외손녀를 대신해 10개월 된 아기를 돌보던 69세 할머니가 10여일 만에 아기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위암수술까지 받은 할머니가 건강악화로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아기는 돌보는 손길 없이 방치되다 사망한 것이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월 15만원의 노령연금으로 힘겹게 살아오다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 60대 노부부도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국가 손길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우리가 낸 세금은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쓰여야 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세금 많이 냈다고 손자까지 공짜밥을 먹어야 한다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주장은 사회안전망이 촘촘히 만들어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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