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5) 사후생 기사의 사진

사후생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최준식 역, 대화문화아카데미)

‘당신은 어디에서 영원을 보내려 하십니까.’ 미국의 어느 고속도로 한편에 서 있다는 팻말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영원이 아니고 그 영원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더불어 ‘당신은 어떻게 그 영원을 준비하고 있는가’ 하는 암시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영원이라는 곳, 장소성을 갖는 그곳에 가 본 사람이 있을까.

이 책은 이런 유의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다. 의학자이자 사상가인 저자는 죽음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만이 삶에 대한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며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의 상실이라고 하는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죽음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 누에고치가 나비로 부화하여 창공을 훨훨 날아가는 것과 같은 자유경을 얻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어렸을 적에 가끔 상여 나가는 것을 보곤 했다. 울긋불긋 꽃상여 위에 소리꾼이 올라가서 요령을 흔들며 구슬픈 만가를 부르면 그 뒤를 따르며 사람들은 눈물바람을 하곤 했다.

나는 상여가 동구 밖을 빠져나가고 공중에 둥둥 떠가던 그 화려한 꽃망울이 어렴풋해질 때까지 서서 지켜보곤 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가랑가랑 이어지던 그 소리 때문에 나는 그 꽃상여가 어디론가 한없이 가는 것이라고 느꼈다.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건너서까지도 한없이 또 가고 가리라는 느낌은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명상은 사춘기 때에 다시 찾아왔다. 치열하게 문학과 예술의 열병을 앓던 시절이었다. 온 우주를 품고도 남을 만한 상상력의 존재, 꿈꾸고 사랑하고 후회하고 갈망하며 무엇보다 끝없이 사유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어버리는 것이라고는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의 현재는 육체의 죽음 너머의 그 어떤 세계, 사람들이 영원 혹은 영혼의 세계로 부르는 그 어떤 세계와 잇대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종교나 서적이 가르쳐준 것이 아니었다. 감수성 많은 청년에게 어느 날 확신으로 다가와 사실로 굳어져버린 그 어떤 느낌이었던 것이다. 내가 어렴풋 상상했던 그 영원의 세계를 기독교가 본향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죽음은 어느 날 방심하고 있는 우리 삶을 덮친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죽음의 손님이 예기치 않는 시간에 우리 삶의 문을 노크하리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애써 외면하거나 모른척하고 싶어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한 가지 장면이 떠오르곤 한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사슴무리를 덤불 속에서 몰래 지켜보던 사자가 몸을 날려 덮친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한 마리의 사슴을 그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공격하여 순식간에 숨통을 끊어놓고 마는 것이다. 혼비백산 도망가던 사슴 무리들은 잠시 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돌아와 그 자리에서 풀을 뜯고 있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에 놀랍게도 그것을 모두 풀 뜯는 사슴처럼 남의 일로 여기고 있다고 하는 점이다.

언젠가 자신의 일로 닥치기까지 그것은 철저히 남의 일인 것이다. 저자는 이점을 일깨우며 수많은 임사체험자들을 인터뷰하여 이 책으로 묶어냈다. 조심하라, 죽음은 뜻밖에 우리의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숲의 덤불 속이거나 심지어 당신 집의 커튼 뒤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숨어 있을 수 있다. 죽음 이후에 당신은 새로운 삶의 경지로 들어가게 된다. 그 삶은 시간 속에 갇혀 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오래전 번역자인 최준식 교수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고 처음 번역하기로 한 것이라며 내게 건네준 책이었다.

내 기억에 그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어떤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 책 역시 어떤 종교적 선입견도 없이 번역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기독교인인 나의 관점에서는 저자가 인터뷰한 임사체험자들의 진술 중 상당부분이 성경의 내용과 흡사하거나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책에 대한 의학적, 신학적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고 묵상하게 한다는 점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 눈길을 끄는 것은 죽음이 다른 존재로의 변화이며 그 다른 존재로의 아름다운 이동을 위해서 준비해야 될 단 하나의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주장한다. “지금 사랑하자. 지금 이 순간이 과거이고 현재이며 영원에 닿아 있으니 사랑을 연습하자.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 또한 사랑이니 지금 그 사랑을 연습하자”라고 주장한다.

바야흐로 육체천국의 시대다. 너나없이 노화를 싫어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그러나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그 아름다움은 어느새 소멸하고 사라져간다.

그리고 애지중지하는 이 수분과 단백질의 육체가 소멸하면서 새로운 영원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떻게 그 영원을 준비해야 되는 것일까.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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