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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노석철] 검은 돈과 검찰 수사 온도차

[데스크시각-노석철] 검은 돈과 검찰 수사 온도차 기사의 사진

2002년 11월 22일 오후 8시40분쯤 서울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두 남자가 은밀히 2.5t 트럭의 열쇠를 주고받았다. 받은 쪽은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쪽의 서모 변호사였고, 건넨 쪽은 LG그룹의 이모 상무였다. 밀폐된 트럭 화물칸에는 현금 150억원이 들어있었다. 2억4000만원이 담긴 박스 62개와 1억2000만원을 담은 박스 1개 등 총 63개의 박스. ‘차떼기’ 대선자금이다.

서 변호사는 비슷한 시기 같은 곳에서 현대차 최모 부사장에게서 스타렉스 승합차를 2차례 넘겨받았다. 하루에 50억원씩 이틀간 100억원이 전달됐다. 2003∼2004년에 걸쳐 8개월가량 진행된 대검 중수부 대선자금 수사에서 확인된 ‘차떼기’ 현장이다. 검찰 수사결과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823억원이나 됐다. 삼성그룹 채권 300억원과 현금 40억원, SK 100억원, 한화 40억원 등도 포함됐다. 민주당의 불법자금도 113억원으로 적지 않았다.

검은 돈 끊지 못한 새누리당

나중에 당시 그 돈을 만져봤던 한나라당 사람들의 회고를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하루에 몇 억원씩 사라지는데 누가 받아갔는지 모를 정도로 돈이 넘쳤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 후 책상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1000만원이 든 봉투가 남아있더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차떼기 여파로 한나라당은 2004년 4·15 총선에서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총선을 20여일 앞두고 난파선의 선장이 된 박근혜 전 대표는 곧바로 천막당사로 들어갔다. 퉁퉁 부은 손을 붕대로 감고 전국을 돌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사실상 그를 보고 121석이나 몰아줬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속까지 변하지는 않았다. 불과 3년 뒤인 2007년 대선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파이시티로부터 대선 경선자금 명목으로 6억원을 받은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당시 대선판에 발을 담갔던 사람들은 그 돈이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후에도 돈 거래는 여전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2008년 전당대회 당시 300만원 돈봉투를 뿌렸다가 고승덕 전 의원의 폭로로 꼬리가 잡혔다. 그때뿐 아니라 전당대회 때마다 ‘당 대표가 되려면 최소 30억원은 들어간다’ ‘누가 지역에 돈봉투를 돌렸다더라’는 얘기가 수없이 나돌았다.

이번에는 현영희 비례대표 의원의 ‘3억원 공천헌금’ 의혹으로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이 발칵 뒤집혔다. 이쯤 되면 차떼기 오명을 벗기는커녕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까지 떠오른다.

그런데 수사를 맡은 과거와 현재 검찰의 태도는 대조된다. 과거 차떼기 수사는 사실 무모해보였다. 확실한 물증이 없어 보이는데도 기업들을 무차별로 압박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안대희 당시 중수부장은 “자수·자복하면 선처해준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지금으로 치면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역으로 기업들의 협조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수사였다는 얘기도 된다. 재계는 “힘없는 기업들만 족친다”고 아우성이었지만 여론은 검찰 편이었다. 결국 기업들은 앞다퉈 자백하기 시작했다. ‘안대희의 무모함’이 검찰 역사를 새로 쓴 셈이다.

눈치보기 의심받는 검찰수사

최근 검찰엔 그런 배짱이 안 보인다. 최 전 위원장이 부정한 돈 6억원을 대선자금으로 썼다는데도 검찰이 오히려 “대선자금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박 전 의장 돈봉투 사건도 폭로된 부분만 조심스럽게 도려냈다. 이번 공천헌금 수사는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무죄에 별건수사 논란까지 빚었던 ‘한명숙 수사’나 담화문까지 발표하며 여론전을 펼치던 통합진보당 수사 때와는 너무 다르다. 혹시 검찰이 MB정부와 미래권력으로 떠오르는 박근혜 후보 쪽 눈치를 보는 건 아닌지 자꾸 의심이 든다.

노석철 사회부장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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