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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김의구] 절차 민주주의부터 바로 세우자

[여의춘추-김의구] 절차 민주주의부터 바로 세우자 기사의 사진

“인기 영합하는 일반인 참여 확대 경쟁 자제하고 선거의 안정성 먼저 확보해야”

요즘 정치를 보노라면 절차적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부를 만하다. 여당이건 제1야당이건, 보수건 진보건 하나같이 내부 선거 절차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가 수립된 지 64년이 흘렀고, 권위주의 정치를 청산하고 민주화의 도정이 본격화된 1987년으로 따져도 벌써 25년이 지났는데 언제까지 걸음마 단계의 문제로 소음을 내야 하는 건지, 한심하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 문제는 아무리 당내 경선이라고 하더라도 공정한 투표 절차, 엄정한 선거관리 체제를 확보하지 못하면 공당으로서 자격을 잃게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과거 당 지도부가 입맛대로 순위를 정하던 비례대표 후보 일부를 경선을 통해 뽑겠다는 발상은 나쁘지 않았으나 투표 부정을 자행함으로써 국민을 두 번 속인 셈이 됐다.

통합진보당은 민주통합당과 4·11 총선 당시 후보 단일화를 하는 과정에서도 여론조사 조작을 자행했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서울 관악을 선거구에서 통합진보당 선거캠프는 ARS 전화여론조사에 대비해 가짜 전화 190대를 개설했다. 해당 선거구 유권자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주소를 속였고, 특정 연령대 표본수가 다 차자 나이를 속이도록 문자메시지를 발송했다.

이런 선거 부정이 통합진보당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민주통합당 총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주선 의원은 선거인단 불법 모집을 사주한 혐의로 지난달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당시 박 의원의 지역구에서는 선거인단을 불법으로 모집한 일로 선관위의 현장조사를 받던 전직 동장이 투신자살하기도 했다. 다른 정당, 다른 지역구에도 선거인단 모집과 관련한 불법이 있었을 개연성이 충분하지만 수사기관의 손이 미처 닿지 않고 있을 뿐이다.

새누리당에서 터진 공천 헌금 사건은 허술한 공천 절차의 문제를 노출했다. 공천 장사가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 헌금이 어디까지 배분됐는지는 수사가 완결돼야 밝혀질 것이지만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깨끗한 정치를 국민 앞에 약속해놓고도 이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더 큰 매를 맞는 게 당연하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는 당원 명부와 대의원 명부가 유출되는 일까지 벌어져 거대 정당의 위신을 실추시켰다.

케케묵은 공천 장사 비리를 제외하고 보면, 최근 일어난 절차 민주주의 훼손 사건들의 배경에는 바뀐 선거 환경이 버티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지고, 휴대전화가 일반화되면서 각 정당들은 경쟁적으로 비당원들의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과거 당원들과 대의원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하던 공직 후보 공천과 당직자 선출 등의 과정에 일반인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는 참여민주주의 확대를 명분으로 내걸면서 각 정당이 실제로 노리는 것은 유권자의 눈길을 끌어 선거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포퓰리즘적 접근을 하다보니, 부정 가능성이 높고 선거관리에 맹점이 있더라도 서둘러 새로운 절차를 도입하고 과거의 절차는 폄훼한다. 이 때문에 경선 룰이 첨예한 다툼거리가 돼 선수가 룰에 따르는 게 아니라 룰이 선수에 따라 마구 바뀌는 광경이 속출한다.

절차의 민주성 문제는 유권자들의 머리에서 쉽게 지워지는 무척 재미없는 주제다. 하지만 절차의 안정성은 민주주의의 토대이자 근간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정당은 아무리 좋은 정책, 공약을 내놓아도 신뢰가 일시에 허물어지게 된다. 정책경쟁을 하든, 정치공세를 하든 안정된 절차 위에 정당이 바로 서는 게 우선이다. 이제 지루한 절차의 문제는 깨끗하게 정리하고 가자. 인기에 영합하려 하지만 말고 공신력 있는 당내 선거와 투표 절차부터 정립해야 한다. 당 지도부나 유력 경선 주자들이 이에 대한 인식을 철저히 해야 한다. 당내에서 할 자신이 없으면 중앙선관위에 선거나 투표 관리를 위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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