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노메달 선수를 위한 잔치 기사의 사진

“올림픽 열광이 말해주는 것, 대선과정도 올림픽 성적만큼의 수준을 요구한다”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돼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는데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 부담감이 컸다. 아무리 강력한 드라이브라도 다 받아낼 것만 같던 백전노장 김경아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했다. 여자단체탁구가 24년 만의 노메달이라 안타까움은 더 컸을 것이다. 현정화 감독은 8강에서 탈락한 제자를 데리고 그냥 나가려고 했지만 기자들이 놓아주지 않자 어두운 구석으로 가 혼자 울었다.

그리고 보았다. 용상 3차 시기에서 실패한 장미란이 바벨을 쓰다듬는 장면. 과거 인상과 용상 합계 326㎏을 들어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앞으로 더 기대가 되던 선수였지만 교통사고로 꿈을 접어야 했던 장미란은 변명 없이 시합에 나가 합계 289㎏을 들고 바벨과 작별을 했다. 그녀는 바벨을 어루만진 손을 입에 가져다댔고, 그러고는 플랫폼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패배에도 거룩함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역도는 역시 정직한 운동이다.

김경아와 장미란은 그래도 행복한 선수들이다. 얼마나 많은 선수들이 끝내 빈손으로 돌아오는가. 올림픽 출전만 다섯 번째. 이번에도 메달은 없었다. 20년 동안 흘린 땀을 메달로 바꾸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난다. 마흔 살 남자핸드볼 윤경신의 경우다. 서른아홉에 다시 출전했다 메달을 얻지 못하고 돌아온 남자사이클 조호성, 아테네올림픽 이후 8년 만에 마지막 도전에 나섰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남자유도 황희태….

승자만이 기록되는 스포츠 경기에서 메달 없이 떠나는 이름들이다. 삶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스포츠에 바쳤던 이들은 회한으로 가득 찬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여태까지 나의 모든 것이었던 운동이 앞으로는 무엇이 될 것인가.

대답해 줄 것이 있다. 한때 그렇게 빛났던 광채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초원의 광휘롭던 시간과 꽃의 영광스런 시간이 다시 되돌려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그 뒤에 남은 굳건함을 찾겠다고 한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초원의 빛’의 핵심 부분. 이보다 더 훌륭한 대답이 어디 있겠는가.

런던올림픽 기간 중 나라는 축제분위기였다. 열대야 속에서 국민들은 밤잠을 자지 않고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환호했다. 아마추어 스포츠를 언제까지 엘리트 체육으로 관리할 것이냐고 비판을 하다가도, 막상 빅 이벤트가 펼쳐지면 메달에 열광하고 10위권 성적을 지상 과제처럼 고대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처럼 돼 버렸다.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선수단이 귀국하면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기관에서 선수들을 초청할 것이다. 기왕 청와대에서 잔치를 베푼다면 메달을 획득한 선수만이 아니라 출전 선수 모두를 초청했으면 한다. 성경에 보면 천국의 잔치는 누구나 다 오라고 초청한다. 아침부터 일한 일꾼이나 한낮에 온 일꾼, 그리고 저녁 무렵에 온 일꾼들에게 모두 똑같은 품삯(1데나리온)을 주는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도 있다. 일꾼들이 하루의 생활을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같은 액수의 돈이 필요하다고 본 포도원 주인의 생각. 이것이 바로 올림픽이 끝나고 난 이후 우리의 자세여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 우리는 스포츠의 열광으로부터 일상으로 돌아간다. 12월의 대통령선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칫 ‘검증’이라는 구실 아래 상대방에 대한 폭로와 비방, 저주의 열기에 휩싸일 수 있다. 나라의 명예를 빛낸 선수단이 돌아오는 이때 잠시 ‘멈춤’과 ‘각오’가 필요하다. 국가와 사회의 수준은 언제라도 올림픽 성적만큼의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어떤 선거라도 자기가 대우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우해줘야 하는 인간관계의 황금률은 살아 있어야 한다.

노메달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페어플레이로 얻은 대선승리라야만 앞으로 5년간 스스로의 차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워즈워드의 시는 이어진다. (초원의 광휘를 지나)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세상의 근원적인 연민이 있다’고.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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