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이제 육상, 그리고 여성이다 기사의 사진

시원섭섭하다. 새벽잠을 설치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으니 좋다. 하지만 ‘또 땄어!’ 하는 소리에 전날의 피로가 말끔히 가셨던 즐거움이 이제는 끝났으니 아쉽다.

런던올림픽에서 선수들은 기대 이상 잘했다. 금메달 우선 집계로는 5위, 메달 전체 합계로는 9위다. 인구(5000만명) 대비 메달 집계로도 10위권이란다. 구매평가력 기준 국내총생산(GDP) 12위(IMF·2011년 기준), 수출 규모 7위, 교역규모 9위(지식경제부·2011년)의 경제 규모에 걸맞은 결과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육상이다. 축구의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은 말할 것도 없고, 리듬체조에선 세계 5위를 기록했고, 그동안 불모지였던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조차 결선에 올랐다. 육상은 남자 50㎞ 경보에서 3시간45분55초로 13위를 기록한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이 기록은 한국 신기록이어서 세계 육상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새삼 확인만 했다.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던 마라톤에서마저 우리나라 선수는 32위, 72위, 82위에 그쳤다.

세계 5위라는 뛰어난 올림픽 성적표에서 낙제점을 받은 ‘육상’. 메달을 뽐내며 귀국할 선수들 사이에서 기죽어 있을 육상선수들. 그들을 떠올리자 어깨가 축 처진 우리나라 ‘여성’들이 겹쳐졌다. 이번 올림픽을 여성복싱 채택, 아랍권 여성 선수 출전으로 역사상 최초 남녀 평등한 올림픽이라는 호들갑 때문이었을까.

세계 10위권을 넘나드는 우리나라 경제 지표 중 여성 관련 지표를 보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3월 내놓은 보고서 ‘젠더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54.5%(2010년 기준)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32위다. 남녀 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38.9%로 관련 통계가 있는 27개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다. 다국적 컨설팅전문회사 맥킨지가 지난 7월 발표한 ‘고위직 여성비율 확대의 중요성: 아시아의 시각’에서도 한국 기업 이사회 내 여성비율은 1%, 최고경영진 내 여성비율은 2%로 아시아에서도 꼴찌 수준이다.

예비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여성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성을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여성이 아닌 국가의 문제로 인식해 가정친화적 근무환경 등 적극적인 해결방법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남녀의 실질적 평등’을 위한 숙제 해결을 출마 선언문에 담았다.

여성부(현 여성가족부) 출범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15대 대선 이후 여성정책을 중시하지 않은 대통령 후보가 있었던가? 하지만 정부 의지만으로 여성고용 확대는 물론 고위직 여성 비율 제고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여성 고용은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맥킨지는 앞의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 최고경영진 중 여성비율이 적은 사실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맥킨지가 최근 유럽과 브릭스(BRICs)지역 기업 279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고경영진 중 여성비율이 높은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평균 자기자본수익률(ROE)과 마진 등 재무실적이 월등히 좋았다고 한다.

런던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들은 “기업의 후원 덕분”이라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았다. 여성들에게서도 달콤한 감사의 말을 듣는 기업이 많아질 때 우리나라도 비로소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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