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호 칼럼] 서울시 신청사를 어찌 할꼬 기사의 사진

“실용성과 조형성 모두 낙제점… 시민회관으로 돌리고 외곽에 새 건물 준비하자”

지난 이야기를 꺼내서 뭣하지만, 나는 새 시청을 짓지 말자고 했다. “광장 주변에 공룡과 같은 새 건물을 세우기보다 지금 건물은 시장이 집무하는 상징공간으로 남기고 나머지는 주변 건물을 조금씩 구입해 광장을 둘러싸는 시청의 모습이 어떨까… 역사도시의 가치를 위해 공무원들이 불편을 감수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신뢰를 보내고,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도 그 사연에 감동할 것이다.” 2006년 6월 30일자 데스크칼럼 내용이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전임 이명박 시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청사 건립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아이디어 공모를 해놓고는 다시 주어진 시간 안에 빨리 짓는 턴키 공모를 해 속도전을 부추겼다. 설계는 여섯 차례나 바꿨다. 여론 때문에 폐기하기도 했고, 인근 덕수궁과의 부조화 때문에 문화재위원회로부터 퇴짜를 맞기도 했다. 2008년에 건축가 유걸의 안으로 가까스로 시공에 들어갔다.

결과는 어떤가. 최근 가림막 속의 맨얼굴이 드러나니 시민들은 경악했다. 이 무슨 흉물인가. 유리로 만든 커튼월로 인해 거대한 비닐하우스의 모습이다. 쓰나미 같다느니, 메뚜기 눈알을 달았다는 유의 비평은 그나마 스토리텔링이라도 된다. 그러나 도서관으로 남는 구청사와 충돌하는 게 문제다. 신청사는 고집불통의 성깔을 드러내며 구청사와 대립하는 양상이다. 과격한 젊은이가 완력으로 노인을 쫓아내는 기세다. 자하 하디드류의 비정형 건축으로 폼은 잔뜩 잡았지만 시청 혹은 서울의 아이덴티티와는 거리가 멀었다.

실내 디자인은 좀 나은가? 로비는 ‘에코 플라자’라는 콘셉트로 거대한 식물원처럼 꾸미고 있다. 7층까지 이르는 벽면에 여러 식물을 심어 녹색 디자인을 구현한 것이다. 그러나 사무실은 사무실이면 족하다. 벽에 작은 화분을 촘촘히 걸어 식물을 심는 것은 그 자체가 또 다른 인공이다. 한두번 볼거리로는 몰라도 항구적인 시설물로 들일 바는 아니다. 오히려 건너편에 리모델링한 프라자호텔을 보라. 시청 앞 잔디를 옮긴 듯한 외관이 멋스럽지 않은가.

지하에 꾸민다는 시민청도 난센스다. 시청은 공무원이 일하는 곳이고, 공무원은 행정으로 시민에게 봉사한다. 더욱이 시민을 위한 공간을 내준다고 무슨 대단한 양보나 희생을 하는 것처럼 자랑할 일이 아니다. 시민을 위한다면 시민청이 아니라 별도의 시민회관을 세워 결혼식장과 같은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는 게 낫다.

이 때문에 신청사의 기능은 주객전도가 되고 말았다. 서울시 공무원의 7분의 1 수준인 2000명 정도만 입주하고 나머지 1만2000여명은 서소문으로, 남산으로, 을지로로 흩어져 지금과 같은 근무형태를 이어간다. 전체 9만여㎡ 가운데 업무용 공간이 2만7000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청사를 왜 지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한 곳에 모여 있음으로써 업무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파리 에펠탑처럼 자꾸 바라보면 좋아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청사는 실용에서도, 조형에서도 모두 실패했다. 지금은 찬찬한 복기가 필요하다. 과정을 되짚어봄으로써 문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공공건축은 고도의 문화적 행위인데도 건축가와 공무원 그룹이 이를 감당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도시의 역사적 맥락을 읽는다거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화의 빈곤이다.

서울시는 다음달 초부터 신청사에 입주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3000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 부었다. 수업료치고는 너무 비싸다. 이왕 지은 건물, 부술 수도 없으니 시민회관으로 돌리고, 시청은 교통 편하면서 개발이 필요한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변두리로 가면 시민들의 편의는 어떡하라고? 나도 35년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시청 갈 일이 한번도 없었다. 민원인은 그리 많지 않다.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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