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치는 필연적으로 짜여진 것”… 박성원 소설집 ‘하루’ 기사의 사진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10쪽)

박성원(43) 소설집 ‘하루’(문학과지성사)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버스 책 광고 카피이다. 오늘 중으로 계좌이체를 해야 하는 주인공 여자는 인터넷뱅킹을 할 줄 몰라 차에 아이를 태우고 은행으로 가던 중 옆에 정차한 버스에 적힌 광고 카피를 무심코 읽는다. 눈발은 흩날리고 도로는 정체돼 풀릴 기미가 없다. 겨우 은행에 도착하지만 영업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자가 아이를 차에 두고 서둘러 은행 일을 보는 사이, 차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차 안에 있던 아이는 싸늘하게 식은 채 발견되는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견인기사 때문이야. 아니야, 진하게 코팅한 탓이야. 아니야, 은행 영업시간 탓이야. 아니야, 정체 탓이야. 아니야, 연극 탓이야. 아니야, 아버지 탓이야. 아니야, 모르겠어.”(33쪽)

여자가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울부짖으며 아무리 되짚어 봐도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결정적 원인은 외부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여자의 삶 속에서 그것은 늘 가능성으로 존재해왔다. 박성원의 소설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결정된 틀 안에서 살고 있으며 우연이란 없다.

‘하루’에서 여자의 차는 그냥 사라진 게 아니다. 여자의 남편은 후배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한다. 후배 직원의 아들은 학원에 다녀오는 길에 차량 견인 장면을 목격하고 아무 의미 없이 견인 고지서를 떼어 읽어보다가 은행을 막 나선 이 여자와 부딪히는 바람에 그것을 길바닥에 흘리고 만다. 후배 직원은 아들에게 주려고 장난감 견인차를 사서 귀가하던 중 해직을 당한 허망함에 술을 마시고 폭설 내리는 벤치 위에 몸을 뉘었다가 다음 날 아침 동사체로 발견된다. 결과론적 얘기지만 ‘하루’는 이런 식의 연쇄적 필연으로 짜여져 있다.

그렇다면 이 저주스러운 꼬리 물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박성원은 마지막 수록작 ‘흔적’에서 생물학을 빌려 ‘부분’이 곧 ‘전체’의 본질일 수 있다고 말한다. ‘흔적’엔 생물학 전공의 시간강사 ‘나’와 옛 제자인 J가 등장한다. J는 생물학 시험 때 소설을 써놓고는 생물학적 답안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한 제자였다. “선생님, 행복을 상자에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측두엽? 해마? 시상하부? 넌 여전히 엉뚱한 말만 하는구나. 생물의 기본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다. 선생님이 그랬죠. 생물학적 유전자를 아직까지 남기지 않은 불쌍한 우리 선생님.”(217쪽)

‘나’는 J를 다시 만나면서 소설과 생물학이 다르다는 생각을 고쳐먹을 뿐 아니라 이 세계란 세포들의 생리현상이라는 유일한 진실에 도달한다. “그래 먼저 나에 대해 말해보자. 난… 난 말이야. 별거 아냐. 우선 나는 이백여섯 개의 뼈와 사 킬로그램의 지방. 그리고 사오 킬로그램의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 내 키와 체중으로 계산하면 구십 리터의 물과 사 점 팔 리터의 피. 그리고 오백 그램의 소금과 이백 그램의 설탕이 내 몸 안에 들어 있지. 이게 나야.”(223쪽)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듯, 작은 세포 하나가 인간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이 생물학적 결정론이야말로 박성원이 찾은 일종의 출구전략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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