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8) 라울전 기사의 사진

라울전(최인훈, 문학과 지성사)

그런 사람이 있다. 별로 애쓰지도 않는데 인생이 술술 풀려나가는 사람,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늘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 안간힘을 써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 가까이에 그런 사람이 있어 평생 동행을 해야 한다면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무런 인위나 까닭 없이 득을 보는 친구와 인생길을 함께 간다는 것은 분명 우울한 일이다. 바로 가마리엘 문하의 사울이 그런 인물이었다.

이 대석학의 밑에는 라울과 사울이라는 두 사람의 수제자가 있었다. 라울은 온유하고 성실하였으며 진지하고 사려 깊었다. 게다가 신앙적으로도 무엇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사울은 반대였다. 두뇌는 좋았지만 기회주의적이었고 다혈질이었으며 자연히 충돌과 실수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울은 사울에게 남모르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불성실하고 충동적인 인간은 온화하고 온유하며 매사에 성실한 자신을 늘 한 발짝 앞서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는 없는 그 어떤 빛 같은 것이 사울에게는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던 것이고, 바로 이 부분이 부러웠으며 두렵기까지 했다. 이를테면 내일 저명한 율법학자들 앞에서 테스트가 있다고 스승이 말하면 라울은 밤을 새워 공부를 한다. 하지만 실컷 쏘다니다 온 사울은 공부하는 그의 곁에서 잠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체하다가 확 책을 펼쳐 몇 줄 읽고 가면 시험은 어김없이 바로 그곳에서 출제되는 식이었다.

그럴수록 라울은 사울에게 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하였지만 이 요령꾼은 늘 저만치 앞서가며 뒤처져 오는 라울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 무렵 이상한 소문 하나가 들려왔다. 머나먼 시골 나사렛이라는 곳에서 한 목수의 큰아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며 예루살렘 쪽으로 오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민중들 사이에 그 목수의 아들이 메시아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번지고 있고, 이것이 종교지도자들에게 상당한 두통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히브리 율법에 통달한 라울은 그가 진정 열왕기 계보상의 메시아일 수도 있다는 직감을 받는다. 그러나 대세는 전혀 목수의 아들 쪽이 아니라는 데 그의 고민이 깊어갔다.

사울의 반응이 궁금해 넌지시 떠봤지만 예상대로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이런 무리들은 보이는 족족 처형시켜야 한다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었다. 아울러 경전에 밝은 라울이 마치 그 목수의 아들이 무슨 성전(聖典)상의 그루터기라도 되는 양 허황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느냐고 책망한다.

얼마 후 충격적인 소문이 들려왔는데 민중을 몰고 다니던 그 나사렛 사람이 급기야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사실과 그 후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어느 날 사라진 사울에 관한 것이었다. 그 나사렛 사람의 추종자가 되어 수배를 받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사울의 종적이 묘연해진 뒤로 라울은 종교적, 현실적 힘을 쌓아나갔고 그 요령꾼이 언제 또 금빛 휘황한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을 비참하게 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온갖 성공의 조건들을 쌓았던 것이다. 그런데 비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 나타난 사울은 뜻밖에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옛날의 그 야망덩어리 열혈청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글거리던 눈에는 한없는 사랑과 자애로움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면서 고백했다. “언젠가 랍비 라울 자네가 내게 말했던 그 나사렛의 목수가 자네 말대로 진정 구세주였노라”고. “자네의 그 높은 예지력이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보았을 때 이 아둔하고 어리석은 놈은 티끌만큼의 예감도 받지 못했노라”고. “이제야 나는 그분을 알았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하였노라”고.

사울이 돌아가고 난 뒤 라울은 거의 실신지경으로 사막을 헤매다가 곡기를 끊고 죽음으로 내몰려간다. 그리고 통곡하며 하나님께 묻는다. “어찌하여 그 같은 자에게는 하늘의 비밀을 보여주시고 나는 그토록 갈망했건만 외면하시나이까”라고.

훗날 전도 여행길에 라울의 이름이 거론되었을 때 사울은 차디찬 어투로 이렇게 말한다. “옹기가 옹기장이더러 나를 왜 이렇게 못나게 빚었냐고 불평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옹기장이는 자기 뜻대로 못생긴 옹기도 만들고 잘생긴 옹기도 빚는 것 아니냐.”

라울전은 김동리의 ‘사반의 십자가’와 함께 한국 기독교 문학의 두 기둥이 될 만한 작품이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필적할 만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 작품이 한국문학사에서 거의 거론되지 못한 채 묻히고 잊혀져버렸다는 점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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