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石坡亭)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이었다. 원래는 조선 철종 때 세도가였던 영의정 김흥근의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였으나 이하응이 넘겨받아 이름을 바꾸고 자신의 호도 ‘석파’로 정했다. 여기서 바라보는 인왕산 자락의 거대한 바위 언덕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왕조가 몰락한 뒤 이 집은 왕족 소유에서 6·25 전쟁 이후 고아원, 병원 등으로 쓰이다가 민간으로 넘어가는 등 부침이 심했고, 주인이 자주 바뀌면서 오랫동안 문이 닫혀 있었다.

이 석파정이 미술관으로 꾸며져 일반에 공개된다. 석파문화원이 석파정이 있는 전통공간 외에 지상 3층짜리 건물을 신축해 서울미술관이란 이름으로 28일 문을 연다고 한다. 500평 규모의 전시공간을 갖췄으니 사립미술관으로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 한복판에 숲과 정원, 정자와 계곡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요식업소 등 돈벌이로 쓰지 않고 미술관으로 꾸민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같은 결정에는 한 독지가의 선행이 있었다. 의약품 유통업체인 유니온약품그룹의 안병광 회장이 사재를 털어 넣은 것이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출발해 성공한 그는 35억6000만원을 들여 이중섭의 ‘황소’를 사들인 것을 비롯해 명작 400여점을 수집한 컬렉터다. 석파정은 경매에서 두 차례 유찰된 것을 매입했고 바로 문화재단을 설립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내놓은 것이다.

“나는 미술애호가이지 전문가가 아니다”며 관장을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에게 맡긴 점도 보기에 좋다. 기업인이 설립한 미술관은 으레 친인척이 운영하던 기존 방식을 탈피한 것이다. 평생 난을 치며 미술을 사랑했던 석파의 삶을 생각하면 그가 머물던 곳이 미술관으로 꾸며진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다만 ‘서울시립미술관’이 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의 이름이 ‘UUL 서울미술관’으로 정해진 데다 인사동에 동명의 갤러리가 있는 점을 감안해 이름을 짓는 데 좀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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