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아부하지 않고 조용히 지지하기 기사의 사진

“노골적 줄서기는 박근혜 후보를 불통 인사들에 둘러싸인 마네킹으로 보이게 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가 ‘국민대통합’ 행보로 신바람을 내고 있다. 지난 20일 전당대회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후보 수락연설을 한 다음 날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았고, 이어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다음 날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이 두 번의 방문에서 박 후보는 상당한 품격을 선보였다.

훌륭한 일이다. 본심이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해 보이지 않으나 지금까지 한국 정치의 틀을 흔드는 산뜻한 발걸음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박 대표를 수행한 여권 인사들의 행렬에 대한 것이다.

TV 뉴스 화면을 보면 수행비서 같은 측근만이 아니라 수십 명의 여권 인사들이 경쟁하듯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 인사들이 봉하마을을 방문할 때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은 숫자는 아닌 듯하다. 탄핵까지 시도했던 당시 한나라당 사람들이 언제부터 노 전 대통령을 그렇게 추모하고 있었는지 의아해진다. 더 이상한 것은 봉하마을에 가서 ‘박근혜’를 연호하는 사람들의 행동방식이다.

박 후보에게로의 쏠림현상은 새누리당 경선 당시 83.9%의 압도적인 지지에서도 드러났다. 5명의 후보자 중에서 한 사람이 이런 득표를 했다는 것은 박 후보의 지도력에 대한 냉정한 평가라기보다는 줄서기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더 심한 것도 있다. ‘여성 대통령은 이 시대의 요청이다’라는 여권 일각의 주장이다.

4년 전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적지 않은 세계인들이 백인 우월 인식이 깨어져나가는 경험을 했다. 유색인은 물론 여성이나 소수 이주민 출신도 얼마든지 중요한 지도자의 자리에 설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성 대통령이 이 시대의 요청’이라는 소리는 설득력 없는 황당한 주장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런 노골적인 줄서기는 박 후보를 구시대적 불통의 인사들에게 둘러싸인 마네킹으로 보이게 할 가능성이 크다. 박 후보는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청와대에 맞서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킬 때도 분명하게 보여줬고, 이번 경선 출마 당시 “어떤 국민도 홀로 뒤처져 있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한 말도 단순한 정치적 수사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그런 한편으로, 어제까지 비판 대상이던 야권 인사들을 영입대상 1호처럼 들먹이는 새누리당의 태도도 설득력이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진보 진영의 학자로 꼽히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경멸적 반응을 보였던 조국 서울대 교수, 교조적 좌파 경제학자라고 비난했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DJ 처조카인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 등을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왜 그렇게 갑자기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대통령선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국민들이 후보들에게서 보고 듣고 싶은 것은 이런 대통합 제스처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한국경제의 활로를 어떻게 모색할 것인지, 막힌 남북문제의 돌파구는 어떻게 찾아낼 것인지, 격렬해지고 있는 동북아 갈등의 해법은 무엇인지, 우리사회의 집요한 이념 갈등은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더욱 중요하다. 바로 이런 것을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박 후보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과거역사 인식, 정수장학회 문제, 2007년 사법부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은 인혁당 사건 사형수 8명에 대한 인식 등 따져보아야 할 심중한 사안이 적지 않다. 박 후보는 혼자서도 잘 하는 스타일이다. 20대 초반에 저격당한 모친의 피 묻은 한복을 빨았고, 그 5년 후 시해당한 아버지의 피 묻은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빨면서 눈물을 흘렸던 경험이 있다.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들의 지나친 아부는 부작용을 낳는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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