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곽금주] 묻지마 범죄의 심리 기사의 사진

살인은 생명의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범죄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끊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까지 둘 사이에 특별한 분쟁이나 갈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많은 살인사건이 가족, 지인 등 면식관계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예측 불가능한 살인과 범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주로 외신을 통해 남의 이야기처럼 전해졌던 ‘묻지마 범죄’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이 격화될수록 ‘묻지마 범죄’는 늘어난다. 그래서 이를 선진국형 범죄라고도 한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살인유형을 분석한 결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한 살인은 60년대 6%에서 90년대 39%로 증가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99년 학생 12명을 죽인 컬럼바인 고등학교 사건,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32명을 살해한 조승희 사건, 올해 다크나이트 라이즈 영화관에서 발생한 12명 사망, 58명 부상의 총기난사 사건 등이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98년부터 시작된 묻지마형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길거리 사람들을 무차별 살해한다고 해서 ‘길거리의 악마’라는 뜻을 지닌 ‘도리마’ 사건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캠핑장의 아이들 85명이 살해된 것과 같이 뚜렷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의 생명을 빼앗는 자포자기식 살인사건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대구 지하철에서 방화를 일으킨 사건을 시작으로 2008년 강원도 산책로에서 한 30대 남성이 “세상이 싫어졌다”며 여고생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는 사건, 서울 논현동에서 역시 ‘세상이 싫어서’라는 이유로 저지른 고시원 방화와 흉기 난동사건이 있었다. 8월에만 해도 의정부 지하철, 인천 3명 살해사건, 여의도에서 무고한 시민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 등 연이어 묻지마 범죄가 보도되고 있다.

가해자 대부분이 실직, 이혼, 사회적 고립 등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며 세상 살기가 싫어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외톨이, 실직자로서 물질주의 사회에서 겪게 되는 상대적 박탈감, 이런 좌절된 분노, 사회 전체에 대한 격렬한 분노가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표출된 것이다.

급격한 경제 발전과 함께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생긴 후유증이라고 할까. 지나친 경쟁에서 경험하는 억압과 좌절감은 내부에 잠재된 공격성을 쉽게 행동으로 표출하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상대평가로 치열한 경쟁을 키워오고, 잠깐 뒤처지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낙오자가 되어 버리는,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도 원인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부족감은 더욱 심해지고, 내면에 축적되는 증오나 스트레스는 ‘가진 자’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의 범죄학자 셰이(Hsieh)는 1980년대부터 1991년 사이에 출판된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실업과 가난, 경제적 불평등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살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누가 희생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이런 범죄에서 보호막 없는 서민층,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가 가장 먼저 희생된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실제 범행은 자신과 비슷한 약자를 대상으로 저지르면서도,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주장하는 것은 죄책감을 덜어내고 책임을 전가하려는 심리도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좌절과 억압이 이번 사건처럼 잘못된 출구를 찾아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시키지 않도록 평소 이를 감싸 안을 수 있는 가족과 공동체, 우리 사회의 치유력을 점검해 보아야 할 때다. 이대로라면 곧 서울은 대낮에도 불안한 거리가 될 것이다. 안전한 서울이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곽금주(서울대 교수·심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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