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도둑들’과 ‘아바타’ 기사의 사진

관객 1200만명을 돌파하며 순항 중인 영화 ‘도둑들’에는 작지만 의미심장한 장면이 나온다. 후반부 마카오박(김윤석)을 잡으러 부산으로 온 일행이 한 여자의 집에 들이닥친다. 여자에게는 아끼는 강아지가 있다. 그 강아지의 이름은 바로 ‘카메론’. 앤드루(오달수)가 “카메론, 카메론”하고 부르는 장면도 이어진다.

이 장면에서 최동훈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객석에선 큰 웃음이 터지지 않는다. 하지만 감독은 이 장면을 볼 때마다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것이다. 혼자만의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카메론’은 ‘아바타’의 감독인 제임스 캐머런(James Cameron)에서 따왔다. 이야기는 2009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연출한 ‘전우치’가 세상에 나올 무렵, 하필이면 전 세계가 주목했던 ‘아바타’도 개봉했다. ‘전우치’도 센 놈이었지만 ‘아바타’는 더 셌다. ‘아바타’는 결국 ‘전우치’의 두 배가 넘는 관객을 확보하며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그 전까지만 해도 역대 박스오피스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는 한국 영화였다. ‘괴물’ ‘왕의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등이 줄을 이었다. 할리우드 영화가 강세인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인도와 함께 자국 영화가 사랑받는 시장이었고, 할리우드에서는 이를 미스터리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바타’ 때문에 한국 영화의 자존심이 깨졌다. ‘아바타’(1362만명)는 ‘괴물’(1301만명)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넘어 단숨에 국내 개봉작 중 흥행 1위에 올랐다.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최 감독에게는 ‘도둑들’로 ‘아바타’의 기록을 깨보리라는 야심이 있었을 것이다. 1급 오락 영화를 표방한 ‘도둑들’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여전히 꺾일 줄 모르는 지금의 기세라면 ‘도둑들’이 ‘괴물’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제 관심사는 ‘아바타’를 넘느냐이다.

이같은 ‘도둑들’의 성과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올 초 ‘댄싱퀸’을 시작으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내 아내의 모든 것’ ‘건축학개론’ ‘연가시’ 그리고 최근 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까지 400만명을 넘는 영화가 속속 나왔다. ‘도둑들’까지 합치면 올해에만 벌써 400만명을 넘는 영화가 7편이 나왔다. 눈부신 성과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 할 만하다. 한국 영화가 관객에게 믿음을 주었고, 1000만 관객의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이왕이면 ‘도둑들’이 ‘괴물’을 넘어 내친김에 ‘아바타’의 기록도 깨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바타’를 넘기 위해 애국심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 이 참에 색다른 아이디어를 도입해보는 건 어떨까. 이를테면 ‘괴물’ 관객 기록인 1301만명을 넘으면 그 이후의 수익금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하는 식이다.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도 제작비가 없어 영화를 찍지 못하는 신인 감독을 지원해도 좋고, 불우이웃을 도와도 좋다.

그동안 우리 영화계가 놓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돈을 잘 벌 때 주변을 챙기지 못했다. 불우이웃 돕기나 사회 환원에 유독 인색했다. 그래서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영화인이 드물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도둑들’의 성공으로 제작사와 감독이 벌어들인 금액이 크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그리고 ‘도둑들’까지 내놓은 작품마다 관객을 사로잡았던 최 감독이 이제 그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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