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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정진영] 외톨이를 껴안는 교회

[삶의 향기-정진영] 외톨이를 껴안는 교회 기사의 사진

흉악 범죄가 교회를 움직였다. 교회가 사회의 치안을 담당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달 25일 서울 중곡동 한국중앙교회 앞에는 목회자와 성도 등 3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거리행진을 시작했다. 손에는 ‘성범죄 없는 동네, 안전한 중곡동-안전한 우리동네 만들기 캠페인’이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와 팻말을 들었다.

교회는 여 성도 이모씨(37)가 며칠 전 성범죄 전과자에게 무참히 살해된 데 대해 사회의 경각심을 환기하고 재발을 막는 대비책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8일에는 교인과 지역 주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리 동네 지키기 지역 자위대’ 발대식을 갖기로 했다. 몸으로 범죄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몸으로 범죄예방 나서는 교회

교회가 범죄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사회 병리 현상을 지적하고 정신적 각성을 요구해 온 것이 대체로 지금까지 보여온 교회의 일반적인 입장이었다. 교회가 행동에 나서야 할 만큼 치안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범죄는 우리를 경악케 한다. 행인이나 지하철 승객,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주부 등 대상과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폭행하거나 살상한다. 칼로 찌르거나 둔기로 때리고 쇠구슬을 무차별적으로 쏘기도 한다.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생도 자주 범죄의 표적이 된다.

언론에서 여러 번 지적한 것처럼 이 같은 ‘묻지마 범죄’에는 공통점이 있다. 범인의 대다수가 절망적인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으며 성인이 돼서는 변변한 직장을 갖지 못하고 전전했다는 것이다. 결국 ‘절망적 외톨이’가 극단적인 ‘절망적 살인범’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들에게는 더 이상 기댈 어깨나 비빌 언덕이 없었다. 개인의 난폭한 성정이 흉악한 범죄로 연결되던 과거의 양상과는 다르다. 사회적 분노와 좌절이 범죄의 동인이 됐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 수만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을 보듬고 사회로 이끌어내는 작동 장치는 너무도 미미하다.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주고 지지해 주면 얼마든지 분노와 좌절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사람들 사이로 불러내고 응축된 응어리를 풀어내는 공동체가 아쉽다.

한국에는 5만 교회, 10만 교역자, 1200만 성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에서 교회의 역할과 영향력은 막강하다. 사회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교회가 상처받아 힘들어하는 ‘절망적 외톨이’들을 밝은 세상으로 불러내면 어떨까. 기본적 생계 지원은 물론 직업적 재활과 긴급 부조 등 방법은 다양하다.

교회가 분노를 풀어주자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도움’이 아니라 ‘관심’이다. 지금도 대다수 한국의 교회는 선한 사업을 통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고 있다. 그런 교회에 또 다른 사역을 요구한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들을 껴안는 데 교회만한 곳이 없다. 이는 전도, 예배, 교육, 봉사, 교제, 치유 등 다양한 사역을 통해 실천되는 교회의 비전과도 무관치 않다. 직접 나서 범죄를 막겠다는 교회도 필요하지만 토양을 바꾸는 좋은 흙이 되는 교회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정진영 종교국 부국장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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