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자식 두고 양자 들일 생각하나 기사의 사진

“제1야당이 정당 무력화 넘어 해체의 길에 들어서다니… 이미지와 정책 자립 이뤄야”

들을 때마다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게 ‘민주당 후보-안철수 단일화’ 시나리오다. 대선 후보 결정을 위한 순회 경선이 한창 진행 중인데, 다른 데도 아니고 바로 당 내에서 이런 저런 ‘단일화 방안’들이 다시 설왕설래되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언론들의 추측기사일지도 모르지만 없는 말을 지어내는 것 같지는 않다.

역대 야당 가운데서 이처럼 스스로 주눅 든 제1야당이 민주통합당 말고 또 있었을까? 작년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지난 4월의 총선 기억이 좌절·패배감으로 굳어진 인상이다. ‘안철수 태풍’이 여당 아닌 야당을 무력화시킨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기실 이는 민주통합당에 모인 야당 정치인들의 자업자득이다. 북한에서는 ‘유훈정치’ ‘이미지 상속’이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다. 하루속히 두 전직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미지와 정책의 자립’을 이뤘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상주노릇에 여념이 없었다. 그게 오래되니까 국민들 눈에는 곡소리만 높이는 직업 곡쟁이로 비치게 된 것이다. 반MB, 반새누리 성향의 유권자들은 어쩔 수 없이 대안을 찾아야 했다. 이것이 ‘스타 탄생’의 전말이다.

물론 야권 후보 단일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DJP연대’로 이른바 ‘공동정부’를 창출한 바 있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성공 사례로 기록됐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당 대 당의 연대이고 단일화였다. 멀쩡한 정당, 그것도 제1야당이 자연인에게 ‘후보 단일화’ ‘공동정부’를 구걸하는 희한한 광경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래 민주통합당의 습관이 되다시피 한 ‘정치 볼거리’다.

정당의 자기부정 의식 및 행태는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국민경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정당은 국민 일부의 자발적 정치결사다. 그리고 당연히 정당은 당원들의 조직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당원과 비당원의 구분을 없애버렸다. 정당은 당의 간판과 정당등록증, 그리고 중앙당 건물과 리더라는 사람들만으로 성립하고 존재한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다. ‘당원이 배제된 정당’을 공공연히 표방,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이 정당제도의 전면적 변화로 가는 과도기인지도 모른다(미국 정당들의 예비 선거를 흉내내기 시작하면서 생긴 현상인데 이번엔 더 적극적이다. 게다가 미국 정당과 한국 정당 사이에는 구조적 차이가 있다). 아니면 한국 정치인들만의 임기응변적, 편의주의적 변용인지도 알 수 없다. 변화가 불가피하다 해도 제발 기형적 괴물을 만들어내지는 않기를!

후보 단일화가 가능하고, 그 덕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민주통합당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돕는 구도가 되면 그건 또 다른 실패와 좌절의 예비일 수 있다. 새 대통령은 무력해지기 십상이고 새 여당은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불임 체질이 돼 버릴 것이다.

선거만이 정치가 아니다.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계속된다. 국민 직선제 부활 이후에 벌써 4명의 대통령이 거쳐 갔고, 다섯 번째 대통령도 임기를 다해가고 있다. 이번에 안 되면 영영 정권 장악의 기회를 놓칠 것 같은 강박감에 휘둘릴 필요가 없지 않을까. 아무리 자식이 미덥지 않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땀 뻘뻘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양자 들일 생각부터 한다는 것인지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제1야당답게 당당히 후보를 내고 그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오히려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체질을 강화하는 길이다. 그래야 이번뿐만 아니라 다음, 또 그 다음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안 원장을 중심으로 한 정당이 만들어진 후 당 대 당 통합 및 후보 단일화를 모색할 수도 있겠지만 포말정당화 되기 십상이다. 급조된 정당과 선거에 임박해 통합할 경우 당의 동질성과 결속력 확보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창 경선이 진행 중인데 안에서 김 빼는 소리가 자꾸 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남의 일이긴 하나 듣고 보기에 한심하고 딱해서….

이진곤 논설고문·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