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찬규] 독도문제 유엔 가면 안 된다 기사의 사진

지난달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14일 일왕의 사과 요구에 대해 일본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부탁하자고 대응하고 나섰다. 합의에 의한 부탁을 하되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일방적 제소도 불사하겠으며 모두가 여의치 않으면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교환됐던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에 따른 절차에 회부하자는 것이 내용이다.

일본이 독도문제 처리를 ICJ 이외에 ‘분쟁해결에 관한 교환공문’과 연결시킨 데 대해서는 특히 주목해야 한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 이래 우리 ‘고유의 영토’였으며 이 같은 사실은 독도를 평화선 안에 포함시킨 1952년 1월 18일의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선언’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이 교환공문에서 말하는 ‘분쟁’은 1965년 한·일 간에 체결된 여러 조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의미하는 것일 뿐 독도문제가 포함되는 게 아님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일본이 견강부회를 시도하는 이유는 독도문제를 ‘분쟁화’해서 ‘국제화’하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독도문제를 ‘양자적’ 또는 ‘국지적인’ 것에서 ‘국제화’함으로써 국제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유엔 등 국제기구를 개입시키려는 것이 일본의 의도다. 그동안 정부는 그 술책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조용한 외교’에 주력해 왔다. 겉으로 조용했을 뿐이지 법적으로 대응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한 대응을 서슴지 않았던 정부에겐 이 일이 하나의 시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1924년 ICJ의 전신인 상설국제사법재판소는 한 판결에서 분쟁을 “법적 문제점 또는 사실에 관한 문제점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 다시 말해 당사자 간의 법적 견해 또는 이해관계의 충돌”이라 정의했다. 그리고 1962년 ICJ는 역시 한 판결에서 “분쟁의 존재는 입증돼야 하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일방의 주장이 타방에 의해 ‘단호하게 반대되고 있음(positively opposed)’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지금 일본이 취하고 있는 행동은 분쟁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며 1965년 교환공문을 거론하는 것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이용 가능한 모든 절차를 남김없이 시도했음을 보여주려는 수순 밟기다.

현 국제법상 국가에 부과된 기본적 의무 중 으뜸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 의무다. 지금 일본이 획책하는 것은 자기들은 이 의무에 충실한데 한국이 충실하지 않아 분쟁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나아가 유엔 총회 또는 안보리 등 국제기관에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를 얻어내려는 데 그 의도가 있다고 본다. 우리에겐 물론 이러한 농간을 저지할 수 있는 외교능력이 있다고 보지만, 이런 경우에 처했을 때 지금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듯이 보이는 중·러가 우리 편에 설 것이라고 생각함은 환상이다.

1946년 10월 22일 북코르푸 해협을 북상하던 영국 군함 4척 중 2척이 알바니아 영해 내에서 알바니아가 부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뢰에 부딪쳐 대파하고 승조원 44명이 사망, 42명이 부상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영국의 제소로 사건을 심의한 안보리는 이를 ‘법률적 분쟁’으로 판단해 헌장 제36조 3을 적용, ICJ로 가져가라는 권고 결의를 채택했다. 이를 근거로 영국이 ICJ에 일방적 제소를 했지만 알바니아는 무시 전략으로 대항했다.

때마침 안보리에서 알바니아의 유엔 가입 권고안에 대한 심의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안보리 권고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자 알바니아는 부랴부랴 재판소에 출석하게 됐고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진행 중 사태가 자국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깨달은 알바니아가 관할권을 다투는 선결적 항변(先決的 抗辯)을 제기했지만 재판소는 금반언(禁反言·estoppel)의 원칙을 적용해 이를 각하하고 관할권을 인정했다. 이것은 우연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 우연이 우리만은 피해 갈 것이란 법은 없다. 일본의 책동이 유엔으로 연장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찬규 국제해양법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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