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데스크시각

[데스크시각-이동훈] 美 대선과 거짓말

[데스크시각-이동훈] 美 대선과 거짓말 기사의 사진

지난주 공화당 전당대회를 시작으로 본격 스퍼트에 돌입한 미국 대선전은 이역만리 떨어진 국외자가 봐도 따분하고 짜증스럽다. 백인 어머니를 둔 흑인 아들(버락 오바마)과 전직 대통령 남편을 둔 퍼스트 레이디(힐러리 클린턴) 출신 간 세기의 ‘성대결’을 4년 전 현지에서 취재했을 때 느꼈던 짜릿한 추억이 아직 뇌리에서 가시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무미건조함에 지루해 했던 상황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러닝메이트로 가세해 ‘하키맘’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곧 자질 부족으로 체면을 구겼지만 이 역시 재미를 더했던 부분이다. 당시 대선전은 역대 미 대선 가운데 손꼽히는 흥행작이었다.

네거티브에 치중하는 후보들

그로부터 4년 후. 오바마와 밋 롬니의 지지율 격차가 살얼음 내딛듯 간발의 차이를 지속하고 있지만 따분한 이유는 뭘까. 1차적으론 ‘도전자’ 롬니의 책임이 크다. 공화당의 인물난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도전자로서 전당대회라는 멍석을 먼저 깔아줬음에도 먹을 것 없는 잔치로 끝낸 채 이번주 오바마의 전당대회로 공을 넘기고 말았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두 캠프 모두 그다지 어필할 게 없다 보니 상대 후보를 겨냥한 네거티브 공세에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롬니의 러닝메이트 폴 라이언 하원 예산위원장은 전당대회에서 과장된 언사로 오바마 저격수란 입지를 굳혔다. 그는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통해 오바마가 자신의 고향 위스콘신주의 제너럴모터스 공장을 유지시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금은 폐쇄됐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대선 주자들의 거짓말을 검증해 퓰리처상까지 받은 플로리다 일간 탬파베이 타임스의 ‘폴리티팩트’는 오바마 취임 전인 2008년 12월에 문을 닫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라이언의 주장을 ‘새빨간 거짓말(Pants on Fire)’로 판정했다.

롬니 후보는 TV 광고에서 오바마의 2008년 발언의 앞뒤를 뭉텅 잘라낸 채 “자꾸 경제 얘기만 하면 선거에서 질 것”이라는 말만 내세워 공격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4년 전 경쟁자인 공화당 동료 매케인 상원의원이 한 말을 오바마가 반박용으로 인용한 말로 드러났다.

롬니와 오바마 캠프의 선전 내용 가운데 각각 46%와 29%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 유권자 호도 수준은 오십보백보다. 양쪽 캠프가 지지자들을 동원해 소셜미디어를 통한 ‘팩트체킹’ 공세에 나서면서 유권자들은 뭐가 진실인지 헷갈리는 상황까지 빚어지고 있다. 롬니 캠프의 여론조사 담당자들은 이런 사실 왜곡에 대해 표로 연결되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반응까지 보인다.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싶은 네거티브 충동은 어느 선거판에서든 생겨나기 마련이다. 검증 수단으로서 긍정적 측면이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상대 후보의 ‘은폐’를 들춰내는 데는 네거티브 공세가 효과적이다.

국외자가 봐도 짜증스러워

문제는 새빨간 거짓말로 치장된 네거티브 공세가 도를 넘어 대중이 진실인 양 믿게 될 때다. 거짓말에 넘어간 국민들은 지도자를 잘못 뽑아놓고 이에 동참하게 됐던 상황을 합리화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리온 페스팅어는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정의한다. 자신의 결정에 상충되는 결과가 나왔을 때 이런 심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밀어붙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전쟁의 성과를 내세워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그가 침공 이유로 내세웠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보유가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음에도 자신은 잘했다고 오기를 부렸다. 그 폐해와 고통은 지금까지 미국 유권자는 물론 동맹국인 우리나라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번 선거에 다시 짜증이 나는 이유다.

이동훈 국제부장 dh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