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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고승욱] 인터넷실명제, 논쟁을 다시 시작하자

[여의춘추-고승욱] 인터넷실명제, 논쟁을 다시 시작하자 기사의 사진

“헌재, 아무 효과 없다는 판단 아래 위헌 결정…악플 폐해 막을 새 대안 찾아야”

헌법재판소가 제한적 본인확인제(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뒤 우리 사회 곳곳이 분주하다. 인터넷 게시판 이용자에게 실명확인을 강제토록 규정한 법이 정보통신망법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82조는 인터넷 언론사의 게시판에 실명인증을 요구한다. 게임산업진흥법 12조에 따르면 게임이용자는 회원으로 가입할 때 실명, 연령을 입력해야 한다. 전자상거래법 6조에도 실명 확인을 요구하는 규정이 담겨있다.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 등 여야 의원 17명은 공직선거법에 담겨있는 게시판 실명확인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동시에 게임산업진흥법, 전자상거래법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주민등록번호 등을 입력해 본인확인 과정을 거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관련 조항이 위헌이므로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는 모든 절차를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다.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실명제는 이미 세 차례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위헌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공직선거법은 게시판 이용자의 실명확인을 규정한 것이어서 정보통신망법 위헌결정 취지에 가장 근접해 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쏟아질 흑색선전과 비방을 어떻게 가려낼지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모든 주민등록번호 입력 절차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름과 나이를 확인하지 않고 16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셧다운제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 본인확인 없이 무슨 방법으로 전자상거래를 할 수 있는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래서 헌재 결정문을 다시 찾아봤다. 결정취지는 본인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운영자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용자는 신원노출에 따른 규제나 처벌 등을 염려해 표현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결정문 곳곳에 헌재의 실질적 고민이 깊게 배어있다. 헌재는 인터넷실명제 시행 이후 국내인터넷 이용자들이 해외사이트로 도피하는 현실을 적시했다. 국내사업자와 해외사업자의 차별, 자의적 법 집행 시비, 인터넷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의사소통수단의 등장 등도 근거로 제시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인터넷실명제가 ‘악플’ ‘신상털기’ 같은 폐해를 줄이는 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판단인 것이다. 목표했던 입법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법은 존속할 이유가 없다.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호한다. 동시에 개인의 인격과 명예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한다. 두 법익(法益)이 상충될 때 입법과정에서는 어느 한쪽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나치지 않는가를 판단하는 곳이 헌재다. 인터넷실명제의 위헌결정은 개인의 인격과 명예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무의미해졌으므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합리적 요소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인터넷에서 난무하는 무책임한 글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명예를 훼손당했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실시된 인터넷실명제는 효과가 없었다.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설 때다. 그것까지 헌재가 부인한 게 아니다.

물론 가장 좋은 대안은 이용자의 각성이다. 익명의 방패 뒤에 숨어 독설을 쏟아내는 가학적 인터넷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법과 제도만으로는 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등 운영자의 태도변화도 시급하다. 실시간검색어 1위 같은 ‘낚시성’ 용어로 네티즌을 끌어들이고 수익을 내는 시스템이 변하지 않는 한 문화가 바뀌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조만간 인터넷실명제 폐지에 따른 대책을 발표할 방침이다. 하지만 아직 누구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인터넷실명제 실시 전 상충되는 두 법익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를 놓고 벌였던 논쟁을 지금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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