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10) 내 생애의 마지막 저녁식사 기사의 사진

내 생애의 마지막 저녁식사 (되로테 쉬퍼, 웅진)

때로는 맑은 슬픔이 필요할 때가 있다. 삶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증류수같이 맑은 슬픔을 느꼈다. 행간마다 어려 있는 그 영롱한 슬픔은 책을 덮을 때에는 한 덩어리의 숭고한 감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책은 ‘등대의 불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독일 함부르크의 한 호스피스동의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에 대한 다큐 형식의 기록이다. 그는 모든 요리사가 꿈꾸는 일류호텔 주방장 자리를 나와 이 호스티스동에서 최고의 요리를 선보인다. 생의 마지막 촛불이 깜박거리는 임종 환자들의 처소인 그곳에서 정성을 다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문을 받아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는 것이다.

물론 임종을 앞둔 이들의 ‘먹는다’는 행위는 건강했던 시절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때로는 주문을 받아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가져가면 이미 죽음의 길로 떠난 이들도 있고, 막상 입에 넣어도 한 숟갈도 못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사 루프레히트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처럼 혼신을 다해 그들 각자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한다.

요리사가 “어떤 음식을 드시고 싶으세요?” 하고 물을 때 병상의 환자는 짧은 순간에 지나온 삶의 수많은 장면들을 반추한다. 음식과 함께 떠오르는 생의 그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들을 상상하며 얼굴에는 행복과 기쁨의 기운이 번지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영롱한 순간들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대로 스르르 눈을 감는 이도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면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로 다시 되돌아간 듯 희미한 미소 속에 행복해하며 눈을 감는 것이다. 결국 호스피스동의 임종환자들이 맛보고 싶은 것은 가버린 시간과 그 기억이라고 하는 것을 요리사는 알게 된다.

그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 녹아있는 사랑과 우정과 그리움을 다시 맛보게 하기 위하여 그는 임종환자가 입술을 달싹여 주문한 음식을 그토록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누구에게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음식의 기억이 있다. 마지막 음식을 떠올리는 것은 그 기억을 길어올려 맛보는 일이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이들과의 식사는 그저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추억을 먹고 사랑을 먹고 우정을 먹으며 시간을 함께 먹는 일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앞두고 다른 무엇보다 제자들과 기꺼이 만찬을 갖지 않으셨던가. 지상에서의 이별을 앞두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셨던 그 마지막 만찬은 어떤 예배보다도 더 거룩하고 지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가공할 속도로 휘몰아쳐가는 세상에서는 사랑하는 이들과의 저녁 한 끼도 자유롭지가 않다. 언젠가 만난 대기업의 한 간부는 일년에 가족과 저녁식사 하는 시간이 기껏 네댓 번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런 바쁜 삶을 은근히 자랑하는 것 같았다. 이런 형편이고 보니 한 대선 후보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어떤 거대 담론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나만 해도 해를 이어 두 분의 선배를 잃었다. 언제 식사나 한번 같이 하자는 약속을 두 분 모두에게 했건만 결국 지키지 못했다. 피차에 영원히 살 것처럼 달려가면서 별 생각 없이 던진, 언제 식사나 한번 함께 하자고 말하는 것이지만 그 ‘언제’의 시간은 끝내 주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언제 식사나 한번”의 ‘언제’는 ‘지금’ 혹은 ‘당장’이라는 말로 바뀌어야 옳을 듯하다.

먹는다는 것이야말로 삶의 증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운 밥 한번 함께 못하고 내 곁을 떠나버린 이들 때문에 가슴이 울컥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우리가 사랑할 시간은 뜻밖에도 생각처럼 그렇게 많이 남아있는 것 같지 않다.

오늘 밤 당장 그리운 이들과 만나 기쁨의 숟갈을 함께 들도록 하자.

김병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