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우영] 모바일 투표 유감 기사의 사진

일찍이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서 정보통신기술이 반(半)직접민주주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단언했다. 30여년 전의 이 빛나는 예지는 점차 실현됐고 마침내 모바일에까지 스며들었다. 작금의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의 모바일 투표는 진일보한 정치실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모바일 투표를 앞세워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민주당 경선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 대개의 관전평이다. 모바일 투표를 둘러싼 민주당의 자중지란은 민주주의에 심각한 경고음까지 울리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의 모바일 투표는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직접선거와 비밀선거 원칙을 위배할 수 있다. 투표가 개인의 사적 공간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표 매수나 신원 도용 가능성이 있다. 둘째, 특정 계층과 세대의 표심을 과대 대표한다. 모바일 선거인단은 일반 유권자 집단의 인구통계 분포와 괴리되어 있다. 나아가 기술적·경제적으로 모바일로부터 소외된 집단의 참여가 애초에 배제된다.

셋째, 정당정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즉 당원과 선거인단에 동일하게 1인1표를 부여해 정당 정체성과 활동 의욕을 꺾어버리고 있다. 실제로 전체 투표의 90%를 넘나드는 모바일 득표수가 경선 결과를 좌우해 당원의 표 가치는 사실상 실종됐다. 넷째, 불안정한 경선관리와 정치공학이 모바일 투표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후보 정견발표 이전에 투표를 실시하거나 ARS 수신 오류와 무효표가 속출하는 사태는 가히 촌극에 가깝다. 공정성 잡음을 자초한 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나 후보들의 경선 보이콧 또한 공당의 처사와는 거리가 멀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당의 모바일 투표 도입 배경과 사고방식을 꼬집지 않을 수 없다. 모바일 경선은 허약한 제1야당의 바람몰이 집권전략의 부산물이다. DJP 연합과 노무현·정몽준 연합이 그러했듯이 민주당은 단독으로 집권할 기량이 부족하다. 근래의 선거들에서 민주당은 경기도지사와 서울시장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지금의 처지는 훨씬 더 궁박해서 안철수 쓰나미에 휘청거리고 있다. 이쯤 되면 애간장이 녹을 법하다. 그러다 보니 모바일 만능주의에 결박돼 우왕좌왕하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모바일 투표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에 실패한 전력도 있다. 체질이 바뀌지 않고 민심이 동떨어져 있는데 모바일을 앞세운다고 능사가 아니다. 목표와 수단을 가리는 혜안을 먼저 가져야 한다.

토플러의 예언과 달리 정보통신기술이 민주주의를 질곡에 빠뜨리는 역설적 현상이 전적으로 민주당 탓만은 아니다. 오늘날은 선거현대화의 시대이다. 이미 세계 30여개국이 공직선거에서 전자투표를 제도화했다. 반면 정보화 최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전자투표 도입은 10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젊은층의 투표참여 열기를 우려한 새누리당의 기득권 방어가 가장 큰 탓이다. 그러다 보니 반대편에선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모바일 실험까지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중앙선관위의 방조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선관위는 모바일 투표가 직접투표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선거관리 위탁을 거부했다. 탓할 바 아니지만 손놓고 있을 일도 아니다. 이미 민주당 전당대회와 19대 총선에서부터 모바일 투표나 여론조사 투표의 파열음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선관위 사이트는 연이어 해킹 공격까지 당하지 않았던가.

선관위는 사후약방문에 기대지 말고 응당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에 대응 지침과 전략을 선제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요컨대 민주당은 기술만능주의, 새누리당은 정파주의, 그리고 선관위는 방임주의와 결별해야 한다. 모바일 투표 파행이 한국 민주주의에 주는 교훈은 바로 이 대목인 것이다.

장우영(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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