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김혜림] 중학동의 단발머리 그 소녀 기사의 사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으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아∼아’

목청껏 노래 부르며 북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저런 흥이 남았을까?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저렇게 살아 있구나. 그래서 자신을 짓밟았던 ‘일본군’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거구나….

할머니들은 소녀처럼 웃었고, 춤을 췄고, 노래를 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할머니들의 노랫소리는 잦아들어 북소리만 강당을 울렸다. 하늘 향해 뻗어 올렸던 손은 눈가로 내려앉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해서. 1990년대 중반,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참석한 한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 본 광경이다.

해묵은 기억이 불쑥 솟아오른 것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음반을 낸 한 인디밴드가 12일 콘서트를 펼친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할머니들은 작은 위안을 받았으리라. 지난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는 전쟁 당시 여성의 인권문제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라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가 야속했던 할머니들은 박수를 쳤을 테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일본 노다 총리를 비롯해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 등이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등 망언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극우 일본인들은 일본 정부보다 한술 더 뜬다. 지난 6월 수요시위 1000회 기념으로 세워진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한 극우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 그는 소녀상 앞에 박은 말뚝과 똑같은 것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팔면서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매춘부상에도 잘 어울린다’는 모욕적인 문구를 박아 넣었단다. 매춘부라니! 사석에서 만난 한 일본인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일본사람 대부분이 정신대를 매춘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혹시 너의 정부가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1965년 진행된 한·일 기본조약 체결과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한·일관계 개선에 나섰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이 나서서 협상을 타결짓고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냈다. 이 일로 김종필은 1996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선정한 ‘여성권익걸림돌 5인’의 하나가 되는 망신을 샀다. 유엔까지 나서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해도 일본 정부가 이 협상을 들어 국가배상이 끝났다고 주장한다는 이유에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의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대일청구권협정은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이렇듯 모든 역사에는 공과(功過)가 있을 수 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유난히 역사인식이 문제시되고 있다. 정치인들의 역사인식이 중요한 것은 공과가 얽혀 있게 마련인 역사를 제대로 인식해야앞으로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참, 음반을 낸 팀이 14일까지 서울 이태원동 용산아트홀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전을 열고 있다고 하니 아이들과 한번 찾아보자.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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