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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전석운]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씻자

[데스크시각-전석운] 자살공화국의 오명을 씻자 기사의 사진
인터넷 검색사이트에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쳐봤다. ‘자살하고 싶다’는 글들이 넘쳐났다. 이유는 갖가지였다. ‘시험을 망쳐서 좋은 대학을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고등학생부터 애인과 헤어진 심적 고통이나 가정불화, 생활고를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글들마다 댓글이 무수히 달렸다. 대부분 쉽게 생을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와 위로들이었다.

그러나 자살도 개인의 선택이라며 자살을 옹호하는 일부 주장도 있었다. 보험회사가 자살을 명백하게 입증하지 못하면 자살하더라도 보험금을 타낼 수 있다며 ‘은밀한 자살’을 부추기는 사이트도 있었다. 심지어 다양한 자살방법을 모아놓은 외국 도서를 구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네티즌도 있었다. ‘完全自殺マニュアル:The Complete Manual of Suicide’라는 제목이 붙은 책의 표지 사진까지 올려놓았다. 이 책을 주문해서 구해봤다는 사람들의 글도 눈에 띄었다.

자살유해정보 유통은 불법

이런 건 모두 불법이다. 현행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하 자살예방법)’은 자살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거나 자살을 조장하는 정보의 유통을 금하고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자살유해정보의 유통을 차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자살예방법상 처벌조항이 없어서인지, 당국의 단속의지가 없는 건지 자살을 부추기는 이런 위험한 글들이 버젓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다. 네이버, 다음 할 것 없이 ‘자살’을 치면 나타나는 ‘생명사랑캠페인’ 배너광고 아래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신문과 방송 등 대부분의 언론은 자살예방협회가 2004년 제정해 권고하는 자살보도준칙을 지키고 있다. 이 준칙은 공공의 관심인물이 아닌 경우 자살 보도를 자제할 것과, 보도하더라도 자살 장소와 방법, 동기 등을 묘사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보도가 모방자살, 충동자살을 불러올 수 있다는 타당한 우려 때문이다. 실제 전직 대통령이나 영화배우 등 유명인사의 자살 직후 자살률이 급격히 올라갔다는 실증적 연구가 있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자살 사건은 언론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론이 애써 외면하는 동안 자살은 소리없이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협하는 괴물로 성장했다. 노인, 청소년 할 것 없이 이 부문 OECD 회원국 중 최고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8년째 달고 있을 뿐 아니라 갈수록 자살자가 늘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2010년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은 1만5566명에 달했다. 같은 해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5015명)의 3배가 넘는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데 반해 자살자는 증가추세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2008년 성인남성의 사망원인 중 8위에 그쳤던 자살이 2010년에는 4위로 껑충 뛰었다. 성인여성의 자살은 사망원인 중 10위(2010년)에서 3위(2010년)로 수직 상승했다.

고위기군 매뉴얼 보급해야

자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나 자살자의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은 충격과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자살 고위기군으로 부른다. 대개 자살자 1명당 발생하는 고위기군을 6명으로 계산한다. 고위기군에서 추종 자살이 발생하면 또 다른 고위기군이 형성된다.

자살을 쉬쉬한다고 해서 자살률이 떨어지지 않는다. 심약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현실도피수단으로 여겨서도 곤란하다. 자살의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책을 강화해야 한다. 자살고위기군을 대처하는 매뉴얼부터 보급해야 한다. 극도의 고립과 분노, 좌절 속에 떨고 있는 이웃들을 방치한다면 사회통합이나 경제민주화 같은 구호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전석운 정책기획부장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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