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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의 풍경] 번역의 귀재 ‘부평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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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한국번역문학 초석 놓은 ‘천재 삼형제’

고향인 인천 부평을 기반 삼아 활약한 삼형제가 있다. 변영만(1889∼1954)·영태(1892∼1969)·영로(1898∼1961) 형제가 그들이다. ‘부평삼변(富平三卞)’으로 불린 세 형제는 모두 언어적 귀재이자 격동의 근대사와 현대사를 살다간 풍운아였다. ‘논개’의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번영만·영태도 한국번역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단채 신채호의 친구였던 산강재(山岡齋) 변영만은 위당(爲堂) 정인보와 함께 조선한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일컬을 만큼 한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서양문학과 사상을 골고루 섭취한 근대 문필가였다. 성균관에서 공부한 뒤 1905년 사법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든 법부(法部) 직할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서 법률을 전공한 그는 1년 뒤 보성전문학교 법과에 들어가 1908년 졸업한 뒤 재판소 서기와 판사로 활동한다. 하지만 그가 판사 업무 외에 외국문학작품 번역에 매진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08년 그는 제국주의·군국주의·금권정치 세 괴물을 다룬 ‘세계삼괴물’이라는 책을 번역해 광학서포에서 출간한다. 원작자는 사밀가(斯密哥). 풀 네임은 사밀가덕문(斯密哥德文)이다. 영국 출신의 교육자이자 역사가 스미스 골드윈(1823∼1910)을 그렇게 표기한 것이다. ‘사밀(斯密)’은 ‘스미스’, ‘가덕문(哥德文)’은 ‘골드윈’을 음차해 적은 중국식 표기이다. 이로 미뤄 변영만은 이 책을 중문번역본에서 중역한 것으로 추측된다.

스미스는 ‘세계삼괴물’에서 당시 유럽을 풍미하고 있던 세 이데올로기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영국과 미국이 자유의 본향이라고? 천만의 말씀! 그들의 ‘자유’는 다수의 빈민을 제외한 국내 유산층의 권리들의 다른 이름일 뿐이고,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이 ‘자유’는 식민지의 노예화와 그 자원의 고갈, 그 주민의 끝이 안 보이는 불행을 의미할 뿐이다.” 변영만은 국내 독자에게 처음으로 반제국주의적이고 반군국주의적이며 반금권주의적인 복음을 전파했던 것이다. 내용 가운데 “인류가 모든 민족을 초월한다”는 구절은 스미스가 재직했던 미국 코넬대학 ‘스미스 골드윈 홀’ 앞에 놓여 있는 돌 벤치에 새겨져 있다.

변영만은 민족주의자이자 애국자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법관양성소에서 더 이상 법학을 공부할 의욕을 잃은 그는 자신의 소신대로 ‘세계삼괴물’을 번역했지만 일제는 이 책을 대표적인 금서로 낙인찍었다. 그가 1900년대에 여러 학술지에 낸 법학 논문 중에는 지금도 시의적절하게 느껴지는 ‘사형폐지설’(1909)도 있다.

하지만 1909년 대한제국이 사법권을 일본에 빼앗기자 판사직을 아낌없이 팽개친 변영만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만 법률가보다는 한문학자로 살았다. 그가 1900년대 최고의 유림 밑에서 갈고닦은 한문 문장력은 특출했으니 일제 치하에서 ‘법률가’로 일할 맛이 나지 않자 묘지명 등 난삽한 한문 문장을 지어주는 일로 연명하기도 하고 영남의 거유(巨儒)들과 교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를 한문학자라는 울타리에 가둘 수는 없다. ‘청빈(淸貧)의 복음’(‘동아일보’·1936)이라는 기고문에서 그는 마르크스와 아인슈타인을 청렴의 위인 사례로 삼기도 했으니 정통 유림들의 시각에서 볼 때 그의 문장에서는 ‘서양 냄새’가 났고 그 자신도 셰익스피어·괴테 글의 ‘신묘한 견지’에 반했다고 자인했다.

변영만은 소시 적에 고명한 한학자인 수당(修堂) 이규남 선생 밑에서 수학했다. 신채호도 그때 동문수학했다. 이규남 선생이 작고하자 1905년 변영만은 만 16세에 법관양성소에 입학한다. 신채호가 성균관에 들어간 것과 달리 변영만이 법관양성소를 택한 것은 신학문에 대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법관양성소는 20세 이상만 입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변영만은 나이를 속이고 입학했던 것이다. 그만큼 조숙했고 학구열이 높았다. 그는 1923년 잡지 ‘동명(東明)’에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 3편,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작품 2편 등 모두 5편을 번역 게재하기도 했다.

변영태는 1912년 만주 신흥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해방 후에는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는데 영어사전을 외울 정도로 영어 어휘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인 1951년 외무부 장관에 취임한 그는 유엔에서 연설할 때 일부러 어려운 어휘만을 골라 사용해 외국 외교관들조차 그의 연설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다. 외무부 장관을 거쳐 제5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치가였지만 그 역시 번역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한국어나 한문 작품을 영어로 옮기는 데 주력했다. 1948년 한국 민담이나 전설을 수집해 번역한 ‘Tales from Korea’를 출간했고 1960년엔 ‘논어’를 영어로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수주 변영로는 중앙학교를 중퇴하고 1915년 조선 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운영하는 영어학원에 입학한 뒤 영어교사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주립 산호세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1918년 문예지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등단, 천재시인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1919년엔 독립선언서를 영문 번역하는가 하면, 시 동인지 ‘폐허’(1920)와 ‘장미촌’(1921)에 동인으로 참가하지만 시를 발표하지는 않았다.

시기적으로 변영만보다 몇 년 늦기는 하지만 변영로도 신문과 잡지에 서양문학 작품을 번역 소개한다. 1922년 ‘개벽’에 발자크의 단편 ‘사막의 열정’을, 1925년 ‘시대일보’에 런던올의 ‘앨로이스 애화’를 번역 게재한다. 1930년 2월부터 3월에 걸쳐 동아일보에 ‘현대영시선역’이라는 제목으로 영시 10편을 번역하기도 했다. 1924년에 발간되자마자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하고 압수되기까지 했던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은 변영로 시의 시사적 의미가 결집된 시집이다. 시집 가운데 변영로의 대표작이라고 할 ‘논개’는 민족적 의분을 직유와 상징의 수법을 통해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논개’ 1연)

이처럼 변영로의 시는 올곧고 저항적인 시편이지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 작품이기도 하다. 동아일보가 발간하던 여성지 ‘신가정’의 편집장으로 근무하던 변영로는 1936년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신가정’ 표지에 손기정의 다리만 게재하고 ‘조선의 건각’이라는 제목을 붙여 조선총독부의 비위를 건드린 것이다. 총독부 압력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일제의 압박이 극에 달했던 1940년에는 향리에 칩거했다. 1947년 한국 최초의 영문시집인 ‘진달래 동산(Grove of Azalea)’도 그의 작품이다. 김규식 전경무 장본익 이인수 변영태 강용흘 변영로 등 모두 7명의 번역 시가 수록돼 있다.

변영로는 대체로 시 부분에서 과작인 편이었지만 수필에 많은 관심을 보여 ‘명정(酩酊) 40년’(1954) 등 수필집을 남기기도 했다. 변영로는 대여섯 살 때부터 술을 탐하여, 소학교 다닐 때에도 술에 취해 사랑방에 뻗어 있기 일쑤였다니, 어쩌면 술에 미련이 남은 이백이 환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술 먹다 말고 문득 평양을 가겠다며 기차를 타고 평양에 간 일이며, 중요한 회합자리에서 양주를 몇 병 마시고 난동을 부리다가 폭설이 내린 새벽에 음식점에서 잠을 깬 사연, 산속 공동묘지 상석 위에서 눈을 덮고 자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사람 다니는 길까지 굴러 내려오기도 하고 폭우 내리는 날엔 불어난 개울에 휩쓸려 떠내려가기도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그런 변영로는 ‘명정 40년’에 이렇게 썼다. “‘모랄리즘’은 나의 말을 믿든 말든 나의 생활의 신조이다. 이 신조까지 없었더라면 그나마의 나의 생활의 지주는 무너지고 말았으리라. 나는 불의와 악수는커녕 타협하여 본 적이 없음을 50이 지난 오늘날 자허(自許) 삼아 말하여 두는 동시에 어느 권세나 금력 앞에 저두평신(低頭平身)하여 본 적조차 없다. 잘났으나 못났으나 사람이란 독왕자지(獨往自至)할 길이 따로 있는 것이다.” 변영만·영태·영로 등 ‘부평삼변’은 한국번역문학의 초석을 놓은 선각자였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

◇자문교수(가나다순)=유성호(한양대) 이상숙(가천대) 최동호(고려대·한국비평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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