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31) 후렴의 시간을 허밍하다… 시인 김중일 기사의 사진

역사는 후렴처럼 반복되는가

김중일(35) 시인은 1996년 단국대 공학부에 입학한 공대생이었다.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 우연히 동아리방에 비치돼 있던 시집들을 읽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비롯해 주로 노동시 계열의 시집이었다. 비유적 장치가 거의 없는 정직하고 결기 있는 언어의 시여서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김중일 역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서울 구로공단 인근에서 보냈다. 친구의 아버지는 손이 없는 한쪽 팔을 늘 바지 주머니 속에 찌르고 다녔다. 옆집 누나는 공장에 다니면서도 그에게 활짝 웃어 주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됐다. 그 누나는 겨우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였고 친구의 아버지는 아내에게 생계를 맡긴 채 절단된 한쪽 손이 너무나 뜨거워 이 세상을 배회하며 잿빛 표정을 지었다는 것을. 최초의 기억과 이미지는 현실 속에서 자주 어긋났다.

“내 생의 뒷산 가문비나무 아래, 누가 버리고 간 냉장고 한 대가 있다 그날부터 가문비나무는 잔뜩 독오른 한 마리 산짐승처럼 갸르릉거린다 푸른 털은 안테나처럼 사위를 잡아당긴다 수신되는 이름은 보드랍게 빛나고, 생생불식 꿈틀거린다 (중략) 상처는, 오랜 가뭄 같았다 영영 밝은 나무, 혈관으로 흐르는 고통은 몇 볼트인가 냉장고가 가문비나무 배꼽 아래로 꾸욱 플러그를 꽂아 넣고, 가문비나무는 빙점 아래서 부동액 같은 혈액을 끌어 올린다”(‘가문비냉장고’ 부분)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이 시에서 그는 타인의 고통을 전혀 이질적인 가문비나무와 냉장고를 연결시켜 새로운 의미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나무라는 유기체와 냉장고라는 무기체 이미지 사이의 단절을 역으로 이용해 삶의 진실을 충격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처럼 사회나 역사가 개인의 감성에 주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가 등단하던 2002년엔 월드컵도 있었고 대통령 선거도 있었다. 5년 뒤 그가 첫 시집 ‘국경 꽃집’(2007)을 출간했던 해에도 대선이 있었다. 정권은 바뀌었고 그가 등단하던 해에 대통령이 됐던 사람은 비극적으로 서거했다. 당최, 책상머리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도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두 번째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를 낸 올해엔 총선이 있었고, 또 한 번의 대선을 앞두고 있다. 세상이 불안할수록 그의 자의식은 더욱 강해진다. 그는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을 세세연년 반복되는 후렴의 세계, 예컨대 ‘커튼콜의 세계’로 바라본다. 잔치(본 공연)는 끝나고 후렴만 반복되는 시뮬라크르 같은 미학이 그것이다.

“역사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족속, 그가 우리를 낳고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아슬아슬한 일./ 형, 우리가 이곳에 뾰족한 이파리처럼 돋아난 이후, 마당 위로 삼십년간이나 내리고 있는 검붉은 새벽을 이제는 정말 저녁이라고 불러야 할까.”(‘거짓된 눈물의 역사’ 부분)

김중일에게 역사의 등은 꼽추처럼 굽어 있다. 역사의 근육은 버림받은 지 오래다. 역사는 죽은 과거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대신 도돌이표의 허밍을 계속할 뿐이다. 그리하여 김중일은 ‘늙은 역사(力士)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백열여덟 해 동안 이 전설적인 역사가 아직 한번도 내던지지 못한 게 있다면, 유일하게 역사의 무거운 그림자뿐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김중일 앞에서는 역사(力士)도 역사(歷史)도 힘자랑을 말아야 한다. 그는 모든 노래를 끝머리에서 붙들고 끝없이 반복하며, 변주는 후렴의 곡조로 흥얼거리고 있다. 그 후렴의 곡조는 무척이나 쓸쓸하고 허무하고 고독한 감성을 자아낸다. 그러나 실존적인 지점도 있다. 우리 모두는 고작 역사의 후렴인 셈인데 그것은 끝없이 변주되고 있다. 그러나 곡조는 이전과 같으면서도 다르게 편곡돼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와 ‘나’가 같으면서도 다르듯. 그 차이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게 김중일의 시 쓰기이다.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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