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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이명희] 안철수인데 후지다?

[여의춘추-이명희] 안철수인데 후지다? 기사의 사진

“발뺌하고 물타기하고 구태 정치 따라해서야 … 정직한 선거 보여줬으면”

전혀 ‘차도남’(차가운 도시의 남자) 같지 않은 펑퍼짐한 외모인데도 자꾸만 ‘오빤 강남스타일’이라고 우겨대더니 전 세계인들을 홀려버렸다. 미국 NBC 방송에 출연해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 말춤을 가르쳐주고 케이티 페리에게 볼뽀뽀까지 받으며 이 ‘싸나이’ 정말 떴다. 미국 음악방송 MTV 시상식에 선 싸이는 한국말로 “이 무대에서 한번쯤은 한국말로 해보고 싶었다”며 “죽이지?”라고 해 ‘역시 싸이’라는 탄성을 자아냈다.

싸이가 얼마 전 한 방송사 토크쇼 프로그램에 나와 병역 관련 얘기들을 털어놨다. 산업체 병역복무 부실 논란으로 군대에 입대하게 된 싸이는 쌍둥이 딸들을 출산한 지 100일도 안 된 부인을 두고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단다. 더구나 며칠만 지나면 만 30세가 넘어 현역 대신 집에서 출퇴근하는 공익근무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싸움이라도 해서 감방에 들어가 훈련소 입소 날짜를 늦춰볼까 했더니 부인이 하는 말이 이랬단다. ‘그래도 싸이인데 후지다.’

요즘 안철수 피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세인트 찰스(聖人 철수)’도 알고 보니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범인(凡人)에 지나지 않았다는 실망감과, 그도 별수 없이 구태 정치를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는 19위로 지난해보다 5단계나 올랐다. 2007년의 11위와 비교하면 한참 처지지만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는 전 세계 144개국 중 117위에 머물렀다. 국회의원 특권을 모두 내려놓겠다더니 뒤로는 한통속이 돼서 세비나 올리고, 검은 돈을 받은 범법 의원들을 감싸고 있으니 어떻게 믿음을 주겠는가.

안철수 현상은 이런 후진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등 돌린 민심의 발로였다.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소통과 타협으로 공정국가를 열어줄 사람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이라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주장(‘안철수의 힘’)에 유권자들은 솔깃했던 거다.

하지만 한 꺼풀씩 벗겨지는 안 교수의 민낯을 대하는 추종자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사당동 재개발 딱지를 구입한 데 대해서는 “어머니가 한 일”이라고 했고, 증여세를 냈는지에 대해선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고위 공직자들이 인사청문회에 나오거나 정치인들이 검찰청사 포토라인에 설 때면 늘상 해오던 얘기 아닌가. 단지 떠넘길 대상이 ‘집사람’에서 ‘어머니’로 바뀌었을 뿐이다. 서울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따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천재가 20여년 전 일을 기억 못하는 것은 납득이 안 된다.

한 달 뒤 유학 가는 사람을 붙잡고 사외이사를 맡아달라고 사정한 대기업도 딱하지만 3년이나 해외에 머물 요량이면서 사외이사를 떠맡고 항공료까지 받아가며 국내를 드나든 행보도 이해하기 어렵다. 불리한 일이 드러나면 발뺌하고 더 큰 것을 터트려 물타기하는 수법은 기성 정치인과 다르지 않다. 보유주식의 절반을 사회공헌을 위해 내놓고, 청춘들의 멘토가 됐듯 양극화로 팍팍해진 국민들의 삶을 보듬어주며 대한민국 미래를 밝혀줄 걸로 기대했던 안철수인데 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 ‘대한초등학교 반장선거’처럼 김제동으로부터 반장 추천을 받은 안철수가 “제게 그런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반장이 목표는 아니고요. 저는 호출된 케이스랄까요”라며 대통령을 할 건지, 말 건지 뜸을 너무 오래 들인 것도 안철수 피로 현상의 원인일 거다.

안 교수는 2004년에 펴낸 책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에서 “내 개인적인 가치관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정직과 성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 세 가지”라고 했다. ‘영웅의 몰락’을 보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대선 출마를 하겠다면 그가 말한 대로 정직하고 성실한 ‘안철수 스타일’ 선거로 사랑받는 정치풍토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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