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11) 제국과 천국 기사의 사진

제국과 천국 (B 왈쉬·S 키이즈마트, 홍병룡 역, IVP)

소유나 삶이냐? 오래 전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이런 제목의 저서로 가히 센세이션이라고 할만한 화제를 몰고 왔다. 삶의 우선가치에 대한 이 단도직입적인 질문은 이 책을 대학가는 물론 당대 지성계의 필독서로 꼽게 했다.

같은 제목이 오늘날 주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주저 없이 “소유고말고”라고 답할 것만 같다. 소유해야 행복하고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행복하다는 식의 욕망학습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어쩌면 양자택일의 이런 질문 자체가 무의미할 것 같다. 끝없이 탐욕을 부추기는 자본제국 앞에 무릎 꿇는 현대인에게 어쩌면 삶에 대한 이런 유의 성찰은 낡은 사고가 되어 버린 느낌이 있을 정도다.

언젠가 미국 월가의 시민데모에 대해 어떤 외국 논평은 ‘도시노예들의 반란’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무리 성실하고 열심히 일해도 거대 금융자본 앞에 시민은 결국 노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일 것이다.

여름의 뒤끝에 전직 언론사 간부 두 사람과 짧은 여행을 했다. 한 사람의 고향이 있는 경북 쪽으로의 여행이었는데 새삼 우리나라 산천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옛집 사랑채에 군불을 지피는 동안 대청마루에서는 누가 이 시대의 참 권력자인가라는 두 사람의 방담이 이어졌다. 반평생을 언론에 몸담았던 이들답게 시종 논리정연하고 날카로웠으며 진지했다.

독재권력 시대는 정치권력이 최고의 권력이었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언론 또한 한때는 권력의 정상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권력의 최고 지존은 자본이라는 것이었다. 거대자본이 채찍을 들고 있지는 않건만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그 ‘리바이어던’ 앞에 날로 노예처럼 무릎 꿇는 형국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군불을 바라보며 듣고 있던 나는 문득 채찍이니 노예니 하는 말에 옛 로마 제국을 떠올리고 있었다.

‘제국과 천국’은 두 사람의 저자가 로마 제국을 향해 들어가는 한 사도의 이야기를 쓰면서 시작된다. 막강하고 무소불위 제국의 권위와 권력을 향해 사도바울은 단기필마로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건다. 그의 유일한 무기는 펜이었다. 제국의 절대권력을 향해 그의 펜은 ‘골로새서’를 썼고, 거기에 제국의 헌법과 전혀 다른 하늘의 법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광휘에 휩싸인 절대지존 카이사르의 이름으로 인사를 나눌 때 사도는 우리의 참주인은 나사렛 출신 한 목수의 장남이라고 가르쳤다.

제국이 주변국을 파죽지세로 무너뜨리며 승리의 쟁취를 구가할 때 사도는 그것은 참승리가 아니라고 했다. 제국이 사자를 풀어 증오의 불길을 지필 때 사도는 조용히 타오르는 사랑의 불길이 더 무서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강성한 그 어두움의 제국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 제국이 결국은 흙담처럼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대찬 사도는 결국 자기의 스승이 그러했던 것처럼 죽임을 당하는데, 그의 죽음 이후 별로 오래 되지 않아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된다.

두 사람의 저자는 로마 제국에 빗대어 오늘의 거대자본 제국과 소비사회를 응시한다. 수많은 사람이 자본을 신으로 섬기며 궁극적 충성을 바치고 우상화하는 현실을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상인 한, 어떤 우상이건 간에 우상을 섬기는 삶의 결론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 소름끼치는 진단과 예언을 한다.

두 사람은 옛 유대의 광야를 표표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며 외치는 선지자처럼 소비의 왕국과 자본의 우상이 결국 우리를 창조주의 영역과 단절시켜 끝없이 거짓된 모조품 속에서 낙을 얻고 그 속에 빠져들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들의 경고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눈먼 소비주의적 광풍의 세계는 너무도 탐욕적이어서 결국 창조세계가 주는 생명과 기쁨을 소멸시킬 뿐더러 수많은 상처와 황폐함 그리고 비인간화 속으로 우리를 몰고 갈 것이라고 직시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스티브 잡스가 아닌 웬델베리를 예찬한다.

저술가이자 대학 교수였던 웬델 베리는 소비사회의 위험을 직시하고 그 질곡을 벗어나 직접 채소를 가꾸고 경작하고 글을 쓰며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간 사람이었다.

웬델 베리가 삶의 방식을 바꾸어 영성을 회복했듯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자본과 기술의 거대한 탁류에 떠내려가는 중이라는 것만은 자각하고 그 흐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 칼과 창으로 일어난 강성한 로마 제국은 무너졌다. 그러나 금융으로 일어난 자본 제국은 칼과 창 없이도 우리를 시시각각 옥죄어 온다. 우리와 우리를 잇는 다음세대들은 어쩌면 제국의 피의 순교와는 또 다른 백색 순교의 선택 앞에 서야 되는 것은 아닐까.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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