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이석] 40년간의 불환화폐 실험 기사의 사진

유럽중앙은행(ECB)이 재정난에 시달리는 국가들을 위해 무제한적인 국채매입을 선언하자 뒤이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달러화를 푸는 3차 양적완화 조치를 취하였다. 증발된 통화가 재정난에 시달리는 나라들의 국채를 사주는 데 쓰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미국 기업들의 채권을 구매해주는 데 쓰인 반면, 이에 따라 기존에 유로화나 달러화를 갖고 있던 사람들의 통화가치는 떨어졌다. 이들 달러화나 유로화를 보유하던 사람들이 이들 국가나 기업을 지원한 셈이다.

통화증발로 당장은 이자율도 내려가고 증시도 오름세를 보이겠지만 문제는 이것이 경제의 체질을 강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진짜 문제를 덮어 보이지 않게 하여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저명한 케인지언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겁먹지 말고 대담하게 적자재정 정책을 펼치라”고 주문했지만 그 역시 3차에 걸친 양적완화까지 필요하다고 여겼는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쏟아부었음에도 왜 또 3차 양적완화를 해야 하는 것일까?

주지하다시피 1970년대 당시 금환본위제도(혹은 달러본위제도) 아래에서는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만이 금을 보유하고 거래할 수 있었고 민간은 금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한편 달러와 금의 교환비율을 정하고 각국은 달러와 자국의 화폐와 고정환율을 유지하는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금태환 능력에 기초하여 실제로는 금 일정량에 대한 청구권으로서의 달러가 국제거래의 교환수단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미국의 금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구심이 들자 그들이 보유하던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금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던 미국은 1971년 닉슨 대통령이 달러의 금태환 중지를 선언하여 달러는 더 이상 상품화폐인 금에 대한 청구권이 아니게 되었다. 달러와 일정비율로 교환되던 각국의 지폐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은 유로존을 만들어 또 다른 불환지폐인 유로를 발행하고 있다. 이제 화폐는 통화문제를 담당하는 위원회의 결정에만 의존하는 그 어떤 것이 되었다.

상품화폐와 연계되어 있던 화폐가 사라진 지 약 40년이 지났다. 그런데 1990년대에는 닷컴 버블이 만들어졌다 무너지고, 2008년에는 미국에서 주택 버블이 터지더니 이제 남유럽 재정위기를 거쳐 전 세계는 다시 달러와 유로가 범람해서 또 한번의 경기변동을 예비하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된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국제결제수단을 발행하는 위치에 있지 않은 국가로서는 비상시를 대비해 달러나 유로 등 국제결제수단들을 보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로화나 달러화가 최근의 경우에서처럼 극적으로 증발되면 가만히 앉아서 손실을 떠안게 된다. 저축은 더 늘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유로화와 달러가 증발되고 이 증가된 유로화와 달러화의 기초로 각국에서 더 많은 통화가 창출될 것이다. 화폐이자율이 낮아지고 돈을 빌리기 쉬워질 것이다. 어쩌면 부동산이나 증권, 원자재 등에서 예기치 못한 활황이 찾아올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저축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통화만 늘린 것이어서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다. 언젠가 그 거품이 터지고 이자율은 치솟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1997년 말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겪은 어려움이 재연될 것이다.

지금의 화폐제도는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제결제통화를 가지지 못한 나라들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 1971년 이후 지금까지 40여년 지속되고 있는 불환지폐 체제는 금융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쉽게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경기변동들로 얼룩지고 있다. 이 화폐체제는 수천 년 유지되던 금본위제에 비해 너무나 불안정하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硏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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