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아직도 가야 할 길 기사의 사진

아직도 가야 할 길 (M 스캇펙, 최미양 옮김, 율리시즈)

“나는 따로 주치의를 둘 만한 형편이 못되어 스캇펙을 읽는다.”

많은 서구인들이 그렇게 말하며 여행가방에 챙긴다는 것이 이 책이다. 스캇펙이 마흔 살을 갓 넘어 쓴 이 책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숙한 인생 연륜과 무르익은 영성, 그리고 빛나는 지혜와 통찰이 담겨있다.

작가이자 사상가, 정신과 의사이자 영성가로서의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것으로 뉴욕타임스 최장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전 세계 2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수천만부가 팔렸다는 이른바 문제적 책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명성에 비해 이 책이 별로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술술 읽힐 만큼 쉽지도 않다. 재미도 없고 쉽지도 않은 책이 그토록 널리 읽히고 그토록 오랫동안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교육, 의학, 종교, 과학 그리고 은총과 같은 방대한 주제를 한 책에 담다보니 조금은 산만해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철학적이고 때로는 신학적다. 물론 가장 먼저 의학적이다.

예컨대 요즘 유행하고 있는 ‘통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그 세계가 종합적이고 포괄적이다. ‘우울증’ ‘부모가 된다는 것’ ‘의존성’ ‘사랑의 문제’ ‘종교와 과학’ ‘고통’ ‘성찰’ ‘신경증’ ‘악과 권력’ ‘자아’ ‘건강’ 등…. 끝이 없다.

이 한 권으로 인생의 매뉴얼을 삼고 있는 느낌이 든다. 어찌 보면 산만한 주제를 나열한 중구난방 의학 혹은 신앙 에세이 같은 이 책이 어쩌면 그토록 오랫동안 지지받고 열렬하게 읽혀져 왔는가 하는 의문은 책을 덮을 즈음에 풀리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도 위로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치유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런 면에서 요즘 주제가 되고 있는 치유서나 위로서 같은 류의 원조 격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결국 인생의 그 많은 문제와 질문 그리고 답을 한 단어로 압축하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 방법론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제시하신 것이기도 했다. 결국 이 의학자는 하늘의 언어를 빌려 지상의 모든 논제에 근접하고 있고, 바로 이러한 방법론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수많은 정신과 의사나 사회심리학자가 나름의 처방전을 써서 책으로 출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캇펙처럼 넓고 깊게 읽히지 못하는 이유는 지상의 문제를 지상의 언어로만 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점에서 이 분야에 신고전이 되고 있는 스캇펙의 이 책과 비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생 자체를 사랑의 도정으로 보고 있어서 우리는 결국 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가고, 가며 아직도 더 가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이는 결국 사랑의 주인인 예수그리스도인 것이다.

저자는 예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오랜 난제들과 미해결의 문제들이 결국 그리스도적 사랑이 아니고서는 풀 수 없는 것임을 곳곳에서 암시한다.

그리고 읽는 이들도 그의 이 논리에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정신과 의사야말로 몸에 좋은 약에 달콤한 당의정을 입힌 것처럼 예수를 말하지 않으면서 예수를 전하는 탁월한 선교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너나없이 실수하고 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싸매며 다시 일어서서 길을 간다.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그 사랑의 주인을 만나기 위하여.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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