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야권 후보 단일화론의 출발점 기사의 사진

“대선 사상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미약하기로는 이번 선거가 으뜸”

지난 19일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기자회견과 그 이후의 행보에서 눈길이 쏠리는 것은 정치 아마추어리즘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는 정치권의 헤게모니는 안중에 없는 듯 ‘새로운 변화’라는 주제로 선남선녀들에게 자신의 아마추어리즘을 과시했다. 그는 “분열과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하면서 “선거과정에서 어떤 어려움과 유혹이 있더라도 흑색선전과 같은 낡은 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함께할 사람이 누구인지 불분명하다’ ‘정치개혁의 주체가 될 만한 비전과 파워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진입장벽이 대단히 높고 변칙 플레이의 고단수들이 즐비한 우리 정치권에 저런 ‘구름의 언어’가 통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 진영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라도 트집 잡기에 골몰하는 우리 정치문화에서 이런 아마추어리즘이 술수의 정치를 무력화시키는 효과적인 전략이자 정치쇄신의 강력한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안 후보는 맥락이 없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장외에서 지지율 1∼2위를 견고하게 이끌어온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모두 ‘정치개혁’을 대선의 주요 이슈로 내건 마당에 이 같은 정치의 아마추어화가 몰고 올 파장을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에 대해서도 안 후보는 ‘정치권의 진정한 변화와 혁신’ ‘국민의 동의’ 등 까다로운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면서 일단은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후보 단일화에 무턱대고 뛰어들지는 않되, 야권이 조건을 갖추면(혹은 갖추어주면)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야권에서 후보 단일화를 ‘절대선’과 같은 명분으로 만들어 유권자들에게 호소해 왔다. 사실 그런 측면이 있기도 했다. 1987년의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 요구는 군사정부에서 문민정부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시대적 과제라고 할 만했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 후보의 DJP 연합은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2002년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는 정치성향도 다르고 별다른 명분도 없었다는 점에서 야합이라는 점 외에는 별 특징이 없다. 초반 지지율 70%를 상회하는 대선 사상 최고의 대세론 주인공을 몰락시켰다는 드라마틱한 정치게임 외에는 당위성을 찾기 어렵다.

이번의 야권 후보 단일화는 역대 대선에서 시대적 요구가 가장 미약하다. 양김에게 요구됐던 문민정부의 명분과 DJP가 무기로 삼은 최초의 정권교체 같은 호재는 사라졌다. 원로그룹 등 야권 외부세력의 단일화 요구를 ‘국민의 동의’라고 해석하기도 어렵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정치적 소신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변화와 혁신’이 아니라고 규정짓기도 어려울 것이다. 정치쇄신을 기치로 삼아 대선출마를 선언한 안 후보는 그래서 후보단일화의 명분이 필요하고, 야권에 그 숙제를 던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행보에서 야권 단일화의 여건을 찾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안 후보를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이번에도 손님을 끌어다 민주당에 넘기는 정치호객꾼 같다’고 한 이한구 원내대표와 같은 인격공격성 발언은 야권 단일화를 촉진케 하는 소재가 될 수 있다. 후보 양보를 한 행위를 정치호객꾼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구태정치의 일종이다.

이번 대선은 ‘좌파 빨갱이’나 ‘보수 꼴통’론을 들고 나오는 쪽이 유리하지도 않을 것 같다. 후보 중에서 그런 좌빨이나 보꼴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어떤 경우라도 한쪽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유권자들은 그런 흑색선전을 곱게 보지도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자충수와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인식은 그래서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를 점화시키는 강력한 촉매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임순만 편집인 s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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