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걸기-한승주] 한국영화, 빛과 그림자 기사의 사진

#1. 제작비 100억원이 투입된 영화 ‘미스터K’의 이명세 감독이 지난 5월 돌연 하차했다. 김윤석 주연의 ‘남쪽으로 튀어’를 찍던 임순례 감독은 지난달 촬영장을 무단이탈했다가 10여일 만에 복귀했다. 영화 ‘동창생’의 박신우 감독은 촬영을 3분의 1가량 마친 상태에서 최근 갑자기 교체됐다.

5개월 사이 해고되거나 교체 위기에 있었던 감독이 최소 3명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신인이 아니라 명망 있는 중견감독이라는 점, 우려스러운 것은 이 영화들이 국내 ‘빅3’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최근 영화촬영 도중 감독이 교체됐다는 소식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듣고 있다”며 “투자사와 창작자 사이에 엄청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일갈했다.

#2. 지난달 말 개봉한 영화 ‘미운 오리새끼’는 끝내 백조가 되지 못했다. ‘큰 손’ 없이 만든 저예산 영화였다. 평단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최종 관객 수는 고작 4만5000여명. ‘친구’로 818만명의 관객을 모았던 곽경택 감독마저 스크린 독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

호평을 받았던 대만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도 사정은 비슷했다. 스크린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고, 그나마 잡은 상영관도 관객이 오기 힘든 시간에 ‘퐁당퐁당’ 교차 상영됐다. 개봉 첫 주 104개관이었지만 2주차에 9개관으로 확 줄었다. 반면 CJ가 투자·배급·공동제작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지난 주말 922개관에서 상영됐다.

한국영화 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생긴 고질적인 문제들이 폭발 직전이다. 2012년 한국 영화계는 ‘피에타’의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한국영화 관객 1억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어느 때보다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은 더할 나위 없이 어둡다.

감독의 예술이라는 영화계에서 감독 교체가 잦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제작의 무게 중심이 감독에서 투자사와 배우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중간 촬영분이 투자사의 마음에 안 들면 수정을 요구하거나 감독을 교체하고, 심할 경우 아예 영화가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본이 예술을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안정과 수익을 지향하는 장르영화만 늘고 있다.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보니 ‘제2의 박찬욱, 봉준호’가 안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상영관 독점이다. 대기업이 투자·제작한 영화가 그 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에 대대적으로 걸리는 현실, 좌석점유율이 20∼40%밖에 안 되어도 무조건 틀고 보는 배짱, 그것이 한국영화계의 ‘불편한 진실’이다. 관객은 느는데 저예산·독립영화 관객은 오히려 줄어드는 형국이다.

프랑스는 스크린 독점을 규제한다. 한 곳의 복합상영관에서 한 영화의 프린트를 두 벌 이상 보유할 수 없으며 특정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30%를 초과할 수 없다. 할리우드에서는 아예 제작사가 극장을 가질 수 없다.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수차례 논의됐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대략 10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계에는 자본력이 탄탄한 중간 제작사가 꽤 있었다. 그동안 이들이 많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대기업이 채웠다.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기업은 돈이 안 되면 극장을 부수어 다른 업종을 하면 그만이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창작자와 후퇴한 관객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다양한 작은 영화가 사라지면 큰 영화의 기반도 없다.

한승주 문화생활부 차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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