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목영준 前 헌재 재판관 “위헌-합헌 기준 시대따라 변해… 항상 중용 염두” 기사의 사진

사형제도가 과연 헌법에 위배하는 지 여부는 무척 어려운 문제다. ‘생명권 존중’과 ‘국가 법질서 유지’라는 두 개의 가치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간통죄도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회적 도덕’ 가운데 어느 것이 우월한 지위에 있는지 쉽게 판단 내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법적 문제를 판단해야 하는 헌법재판관은 고도의 전문성은 물론 합리적인 역사관, 철학,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확정된 사실관계에 현행 법률을 적용해 판단하는 대법관 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오로지 법률 조항 그 자체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느냐가 유일한 판단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법관 생활 23년, 헌법재판소 재판관 6년 등 모두 합쳐 29년 동안 법조계에서 일하다 최근 퇴임한 목영준(57) 전 재판관을 만난 이유는 바로 이 같은 판관의 고뇌를 솔직하게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동 옛 삼풍백화점 자리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대담을 가졌다.

-법원행정처의 요직 등을 거치고 재판관까지 역임하고 은퇴했는데 소감 한마디만.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거나, 특별히 노력을 더한 것도 아닌데 법원에 있는 동안 재판 업무나 사법행정 업무에서 과분한 평가를 받았고, 헌법재판관으로서도 소중한 경험을 했다. 지난 29년간은 정말 보람 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법원의 판결은 헌법소원 대상이 아닌데 최근 헌재가 ‘법률 부칙이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 결정이 사실상 재판소원을 받아들인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헌재와 대법원 간 갈등이 있었는데.

“한정위헌 문제에 대한 오해다. 헌재는 사실관계에 무관하게 법률 그 자체에서 나오는 추상적·객관적 의미를 판단하는 것이다. 두 기관의 권한 문제는 사법소비자인 국민에게 혼란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명령규칙의 위헌심사권한, 재판소원 문제, 변경결정의 기속력 문제 등은 헌법과 법률 개정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을 무효라고 선언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헌법재판관을 국회동의조차 받지 않은 것은 위헌 아닌가.

“국내외 강연을 다닐 때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심사해 폐기하는 권한을 가진 재판관의 경우 민주적 정당성을 갖기 위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2명의 재판관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의 재판관도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 전 재판관은 국회가 추천한 재판관에 대해 청문회를 갖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재판관 선출은 국회의 의사결정이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자신이 추천한 후보자에 대한 청문을 한다는 것은 선뜻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자신이 추천해 놓고 자신이 청문하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정치권과 법조계의 공통적인 의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모든 재판관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 헌재가 국회에 제출한 헌법 개정안에 담겨 있다.

-갈수록 헌재 역할이 커 가는데 재판관을 늘리거나 다른 조치가 필요한지.

“헌재의 결정으로 동성동본금혼 및 호주제도가 폐지됐고 재외국민의 선거권이 확대되는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민주주의 원칙의 확립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가치의 충돌이 정치사회적 메커니즘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헌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숫자 늘리는 것은 반대다. 재판관 전원합의로 심리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대신 지난 1년처럼 재판관 공석이 계속되는 경우를 대비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른 국가들처럼 예비재판관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면 한다. 헌법 개정사항이라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재판관 간 합의를 할 경우 모두 법률전문가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는다고 하던데.

“천만의 말씀이다. 외부에서는 재판관들의 경력이 유사하니까 사고방식이나 가치관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상대방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중요 사건에서는 숙고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헌법재판관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진 국민들을 대변하는 것이므로,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결정은 무엇이었나.

“우선 시간적으로 절박했던 이른바 ‘BBK사건’이었다. 접수된 후 13일 동안 연구보고서 작성, 수차례에 걸친 재판관평의, 결정문의 작성 및 선고를 다 마쳤다. 지난 6년 동안 사무실에서 며칠 밤을 새운 건 그때가 유일하다. 국제적 이슈였던 재외국민 선거권 사건과 외국인산업연수원생 노동부지침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다수의 재판관님들이 그 파장을 우려하시면서도 위헌 의견을 모아주신 양벌규정 사건이나 한일협정 사건도 잊을 수 없다. 사형제에 관하여 깊은 고민과 연구 끝에 나름대로 정리된 위헌의견을 낸 것도 의미가 있었다. 다만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미디어법 권한쟁의 사건에서는 쟁점마다 재판관님들의 의견이 너무 갈려 산만한 결정문이 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형제도 등 위헌 일보 직전까지 간 법률이 적지 않은데 결국 위헌과 합헌의 결정적 근거는 무엇으로 판단하는지.

“가령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 가운데 어느 것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어려운 문제에 대한 영원히 보편타당한 답은 없고, 사회구성원의 의식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제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러한 접점이 ‘중용’이라고 생각한다.”

중용(中庸)은 지나치거나 모자라지도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유교적 논리다. 하지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개념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즉 아리스토델레스의 덕론(德論)의 중심개념인 중용을 항상 염두에 두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성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지견(智見)에 의해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하는 현명한 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였다.

-헌법재판소의 순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가령, 다민족국가인 미국의 경우 200년 동안 흑백 갈등이 있어 왔지만 헌재 역할을 하는 연방대법원이 점진적으로 흑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을 해석해 왔기에 폭력에 의한 문제해결이 지양되고 법테두리 내에서 사회체제가 원활하게 굴러갔다. 만약 헌재가 소수자의 권리를 등한시하고 외면한다면 이들은 법에 의지하지 않고 폭력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점점 어려워지고 사회분열은 가중될 것이다.”

실제로 미 연방대법원은 1954년 이전까지는 흑백 간 인종차별 문제를 ‘분리하되 동일한(separate but equal)원칙’을 적용해 왔다. 이를테면 흑백 간 학급 편성은 달리하되 교육내용 등 다른 모든 분야는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등 법원에서도 요직을 경험한 그는 법원과 검찰의 구속영장 갈등 문제에 대해 “양쪽의 직무가 다르기 때문에 영장발부 기준이 다른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며 국가 법질서의 확립과 신체의 자유의 조화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법조인의 덕목으로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정의감’이었다. 법관의 몸가짐에 대해서는 “법관은 공정해야 할 뿐 아니라 국민에게 공정하다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관점에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자제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목영준 전 헌재 재판관은

목영준 전 헌재 재판관은 법원 내 재사로 통한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法諺)을 일찍이 새롭게 해석해 법원에도 공보관을 둬야 한다고 주장해 이를 관철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변해가는 사회에서 단지 어려운 판결로만 법관이 말해서는 안 되고 언론을 적극적으로 동참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 덕에 그는 초대 공보관과 기획심의관을 겸임하면서 판결과 법원행정을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앞장섰다. 상사중재법의 대가이며 중재법을 사실상 만든 주역이다. 1917년 설립된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관이기도 하다. △경기도 안성(57) △서울대 법대 △법원행정처 기획실장 △헌법재판관 △저서 ‘상사중재법’ ‘상사중재법론’

만난사람=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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