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내 영혼의 책갈피] (13) 크리스천 무신론자 기사의 사진

크리스천 무신론자 (크레이그 그로셀, 최종훈 옮김, 비젼북)

부제로는 ‘하느님을 믿는다면서도 마치 그분이 없는 것처럼 잘 사는 그대에게’라고 붙어 있다. 가슴이 철렁한다. 그렇다고 결코 빈정대거나 비아냥거리는 투는 아니다. 비슷한, 아니 더욱 과격한 지적을 오래전 예수님께서도 하시지 않았던가.

정기적으로 금식하며 십일조를 빠뜨린 적 없고 계명에 철저한 바리새파 교인들, 그리고 치렁치렁한 사제복 차림으로 평안히 가라고 들고나며 복을 빌어주었던 종교 지도자들에게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까지 하시지 않았던가.

이 책은 위선과 기만, 탐욕과 교만, 염려와 불신 속에서 헤매는, 그러면서도 감아놓은 태엽처럼 주일날이면 어김없이 교회를 찾는 크리스천들의 어느 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다.

저자는 A W 토저가 “그대는 가짜인가, 진짜인가”라고 물었던 바로 그 질문처럼 크리스천의 참다운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 한다. 예컨대 신실한 크리스천과 냉담한 불신자들 사이에 선 ‘중간지대 사람들’을 응시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도저히 삶이 못 따라가는 지식적인 크리스천, 죄와 회개의 쳇바퀴를 일상처럼 돌며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거의 평생에 걸쳐 되풀이하는 크리스천, 특히 교회에서는 침울하고 백화점 문 앞에서는 활기를 띠는 물질중독의 크리스천, 성경의 모든 사실들을 수긍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 메시지가 신화나 전설처럼 가물가물하게 들려오는 크리스천, 세상적 욕망의 어느 하나도 놓고 싶지 않으면서 동시에 천국도 가고 싶은 크리스천, 십자가도 보혈도 천국도 지옥도 심지어 구원마저도 긴가민가한 크리스천, 무슨 일만 터지면 기도도 하지만 그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하는 크리스천, 부끄러운 과거의 죄에 발목 잡혀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는 크리스천, 기도는 해보지만 들어주실 것 같지는 않게 여기는 크리스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 같기는 한데 어쩐지 자신은 별로 사랑하시지 않을 것 같다고 느끼는 크리스천, 교회는 그저 보험 들듯이 등록하고 설교는 인문학 특강 비슷하게 듣고 마는 크리스천.

저자는 예컨대 하나님을 믿지만 삶은 거의 무신론자와 같은 그런 ‘문제적 크리스천’들에게 “너는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찔렸던 것은 바로 그 날카로운 질문들이 비수처럼 나를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이 시대 크리스천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아픈 지적이 아닐까 싶다. 교회마다 위로와 사랑의 메시지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아픈 지적은 점점 드물어진다.

이 즈음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마 병사의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용맹스러운 로마의 병사 한 사람이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 투항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병사는 자신의 오른편 팔뚝을 걷어 올려 문장을 보여준다. 로마황제 가이샤의 병사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가이샤의 종이다. 나를 살리겠으면 이 팔뚝부터 잘라라. 이 문장을 한 채 그대들의 종이 될 수는 없다” 라고.

피하고 싶은 것이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교회도 가끔은 질문해야 될 것 같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대는 정말로 그리스도의 종인가, 로마의 병사처럼 그대도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가. 도대체 그대는 누구의 편인가. 아니 영적으로 살아있기는 한 것인가. 저자의 말처럼 피하고 싶은 그 질문이야 말로 교회마다 차고 넘치는 크리스천 무신론자를 살리는 첫 해독제가 될 것이다.

(서울대 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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