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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박병권] 승복하지 않는 사회

[여의춘추-박병권] 승복하지 않는 사회 기사의 사진

“개인이 아닌 정의와 법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자유민주주의의 근간”

사회지도층의 처신이 중요한 이유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일반 사람들보다 무척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의 확정 판결을 받은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증오에 가까운 언사로 사법부를 욕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당사자인 곽 전 교육감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지식인까지 가세해 대법원과 특정 대법관을 희화화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현자(賢者) 중의 현자’로 일컬어지는 대법관의 결정이 이처럼 홀대받는 곳은 지구상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권위가 실종됐다. 이전 정부에서 주목받던 한 인터넷사이트에는 아직도 ‘천안함의 진실’이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이 시리즈로 올라와 있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는 요지의 글이다. 사실 이것은 약과다. 천안함의 침몰을 직접 보지 못해 확신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가 공직에 탈락한 변호사도 있었으니까.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고 최고재판소인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정부기관이나 정권의 정통성이 빈약해 권위가 없어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옛날 얘기다. 핑계일 뿐이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런 이유를 대는가. 상대편이 발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믿고 싶지 않은 거다. 진영 논리에 불과하다.

이른바 지도층이라고 불릴만한 인사들이 권위를 무시하는 현상이 잦다보니 승복하지 않는 것이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비치는가 보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밝혀져 유죄판결을 받은 전직 의원은 죗값을 치르러 가면서도 독립투사처럼 공개리에 환송회를 했다. 잘못을 반성하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저축은행 퇴출과 관련해 수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검찰에 잡혀 들어갔는데도 누구하나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다. 재수 없게 자기만 걸려들었다고 생각해서일까. 우리나라 정치인은 검찰과 각만 세우면 위대한 인물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야권인사들은 집권하기만 하면 마치 검찰을 쓸어 없앨 것처럼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검찰은 어차피 권력층에게는 불편한 존재라는 것을 알 만한 국민은 다 아는데도 말이다. 자기들만 모를 뿐이다.

노르망디 귀족 출신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1년 교도소 조사를 위해 미국을 다녀온 뒤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명저를 남겼다. 그는 영국에서 건너간 신세계 주민들을 집중 연구한 뒤 미국의 번영을 예견한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가 당시 미국사회에서 발견한 덕목은 바로 ‘복종’이었다. 미국은 당시에도 정의와 법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미국이란 사회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조국을 떠난 이민자들의 사회이기 때문에 출발부터 평등사상이 몸에 밴 장점이 있긴 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종교적인 영향도 물론 있었겠지만 특정 개인이 아닌 권위에 대한 복종이야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승복이나 복종은 상대를 인정하는 것으로 더불어 사는 사회의 기본이다.

사실 원활한 국가 운영을 위해서는 집권 여당도 잘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야당이 더욱 세련되게 처신해야 한다. 짧지 않은 우리 정치사에서도 현명한 야당 지도자가 있었을 때 다른 시기보다 안정되고 발전적인 정치문화가 존재했다. 상대를 인정하고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그 주장이 맞다면 기꺼이 승복하는 자세가 당당한 모습이란 말이다.

우리는 임진왜란 같은 국란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저술된 ‘징비록’의 먹이 다 마르기도 전 병자호란을 겪었고,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 말자고 박은식이 저술한 ‘한국통사’가 나온 지 한 세대 만에 분단과 민족상잔의 전쟁을 치른 민족이다. 역사는 선순환보다 악순환이 오히려 더 많다고 한다. 더 늦기 전에 각성했으면 한다. 지도층부터.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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